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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프리스트 - 스콧 찰스 스튜어트


 

프리스트

 

 


 

스콧 찰스 스튜어트/형민우 원작



 

한국 작가가 그린 만화가 미국 코믹스에 정식으로 연재되고 그것이 다시 할리웃 메이져 영화로 제작된다. 이건 10년 전만 해도 만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10여년 전 처음 한국 만화잡지에서 연재된 한국 작가 형민우의 만화 '프리스트'는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처음 프리스트가 연재되었을 때를 기억해보면 소년(혹은 청년)들에게 상당히 센세이션했다는 기억입니다. 일단 프리스트의 그림체는 작가 본인의 전작과도 차이가 날 뿐더러 당시 연재되던 잡지의 여타 만화들과 비교해도 단연 튀어보이는 형식이었습니다. 거칠지만 조형적이고, 미국 코믹스 스러우면서도 일본-한국 만화의 연출에 더 가까운 요즘 말로 치면 퓨전적 성격이 강한 만화였지요. 서부를 배경으로 선과 악의 대리자들이 결투를 펼치며 성서적 상징과 구절들이 인용되고 괴물같은 형상의 프리스트가 날개달린 악마와 결투를 벌이는 등 얘기거리도 풍부한 작품이었지요.




개척시대 서부를 컨셉으로 한 시대배경의 만화지만 미국연재시엔 그런 익숙함 보다 한국적인 느낌의 정서가 더 어필했다는 얘기가 있는 만큼 미국 정서에 철저히 입맛춤한 현지화도, 그렇다고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겁네 드립치는 애국심 마케팅도 아닌 절충적 형식. 무국적 성격의 글로벌리즘(얼쑤)이 자연스럽게 그쪽 동네에 수용되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튼 원작 만화는 '샘 레이미'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제작 참여로 그 전까지 더디기만 하던 영화화도 구체화되어갔습니다. 그리하야 올해 드디어 미국에 이어 국내에도 개봉한 영화판 프리스트는 그러나 원작 프리스트의 색깔은 많이 희석된 느낌입니다. 역시나 올해 개봉 예정인 '카우보이 VS 에이리언' 같은 서부 배경의 환타지물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시대배경이나 설정이 많이 바뀌면서 서부 느낌이 나긴 하지만 근미래 디스토피아의 SF 영화로 바뀌었어요.

아마도 각색 과정에서 이리저리 손을 댄 결과일 지금의 모양은 성공일까요? 영화를 본후의 제 생각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일단 원작 만화의 장점들이 사라졌습니다. 원작의 큰 매력 중 하나는 선인지 악인지 모호해져 버린 주인공의 정체성일 겁니다. 하지만 폴 베타니가 연기한 프리스트는 그냥 엿같은 상황에 처한 선한 남자일 뿐입니다. 좀 까칠한 면이 있고 억눌린 과거의 비밀 같은 것도 있긴 하지만 원작 만화에서처럼 드라마틱한 개성은 없어요. 그렇다면 악당은 어떤가요. 성서속 타락천사에 가까운 원작의 사도들은 순수한 악마이며 어던 형태로든 재해석 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선 단순히 '흡혈귀'로 요약해버립니다. 그것도 영적인 존재라기 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이형종족일 뿐입니다. 보스격으로 등장하는 적에겐 프리스트와의 사연이 있고 나름의 반전들도 있지만 원작에서의 숙명적 적대관계에 비한다면 그냥 '너 그때 왜 날 버렸어!'류의 알콩달콩 러브 로맨스 같더라 이겁니다.

근미래적 배경과 디스토피아 설정도 정말 필요했나? 싶을 만큼 낭비되고 있습니다. 일단 독창적인 구석이 없습니다. 교단에 의해 지배되는 도시의 모습은 그 설정이나 십자가 문양 때문에 이퀼리브리엄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런데 사상적 독재자에 의한 디스토피아 묘사는 왜 항상 이런 식인가요. 끊임없이 광고를 퍼붓고 거리엔 보란듯이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근미래 정말 저런 세상이 오더라도 좀더 세련되거나 의뭉스런 모습이 아닐까요? 하긴 요즘 신문이나 뉴스 보고 있노라면 딱히 그런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말입니다) 원작과 달리 총을 쓰지 않는다는 프리스트들의 모양새나 무기들도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 뿐입니다. 폐허 위에 생겨난 황무지와 거기 사는 개척민들의 모습은 작년에 봤던 일라이가 떠오르고요. 뱀파이어 소굴은 어떤가요? 뭔가 충격적이여야 할 이 장면이 너무 뻔해서 전 다른 클라이막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흡혈귀 디자인이야 바이오하자드 영화판이나 둠 영화판의 소스를 그대로 빌려 쓴 것 같고요. 그나마 개성적으로 느껴진 몇몇 장면들이 원작의 영향이 큰 부분이었다는 점도 아이러니입니다.

몰개성적인 미술만큼이나 스토리도 개성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원작 만화도 자유로울 순 없을 겁니다. 개성적 스타일에 비해 스토리 부분은 몇몇 일본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서양애들한텐 그 필요이상의 진지함과 성서인용이 오히려 독특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적 스토리도 저쪽에선 인기의 요인이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영화에선 이런 부분을 거침없이 쳐냅니다. 설정 자체가 완전히 바뀐 마당에 원작의 개성들을 굳이 가져올 필요를 못 느낀 걸가요. 그렇다고 바귄 스토리가 엄청 개성있는 것도 아닙니다. 원작만화보다 더 뻔해졌고 무개성적이니까요. 내가 니 애비다 같은 경우는 살짝 한국막장극 스멜이 나는데 이게 차라리 개성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할 말 다했죠 뭐...

사람 보는 눈이 다 거기서 거기이듯 6천만불의 제작비에 비하면 북미 흥행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닌 모양입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월드와이드 성적으로 본전치기는 한 모양인데... 이래가지고 후속편 제작은 힘들겠죠. 설령 만들어진다 해도 지금 상황에선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요.

한국 만화 창작자의 아메리칸 드림이란 면에서 프리스트는 국내 관객에게 분명 어필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출판만화 시장은 이미 고사상태나 다름 없고 출판만화 시절보다 더 열악하고 승자독식 성향이 강한 웹툰만화로 옮겨온 지금의 상황을 보면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질 것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웹툰 원작의 영화 제작이 활발해지고 최근의 강풀 원작들이나 이끼 처럼 흥행면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이기 시작했으니 '출판만화-만화원작수출-헐리웃제작'의 프리스트 경우와 달리 '웹툰-국내영화제작-헐리웃리메이크'같은 새로운 경로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