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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파수꾼 - 윤성현


 

파수꾼

윤성현


딱히 숨길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드러내고 말하기도 뭐한 것들이 있지요. 이 영화는 딱 그런 부분들에 관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육두문자만 남발하지 말고 제대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았다면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결말은 달랐을 겁니다. 이런 부분에서 소통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라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이야기는 그냥 리얼다큐입니다. 정말이지 저 나이또래 남자애들, 아니 까놓고 말해서 머리 굵고나서 남자들 싸움(물리적이던 감정적이던)은 실질적 이권문제가 아닌 이상 다 저모양 저꼴입니다.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서로 말안하고 꽁한 채 잘난 자존심만 세우다가 추태를 보이는 거죠.

파수꾼은 리얼한 영화입니다. 아이들의 대사나 행동이나 그 사고방식들이나 흘러가는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리얼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6년을 시커먼 남자녀석들하고만 보냈던 전 영화에서 나온 대사들, 싸움들, 시츄에이션들을 신물나도록 봤어요. 몇몇 사건들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들과 너무 비슷해서 지나칠 정도로 감정이입을 했고 덕분에 혹시 감독이 동창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가질 정도였다니까요.

베키(희준)은 쫌생이입니다. 기태는 터프한 척 가장하지만 관심받고 싶어하고 애정욕, 과시욕, 독점욕의 경계가 무너져 힘들어하는 찌질이고, 동윤은 어른스러운 척 하지만 그만큼이나 융퉁성 없고 고지식한 멍청이입니다. 최악의 조합이에요. 이 영화의 모든 불행은 이런 나쁜 조합의 녀석들이 불X 친구를 먹으면서 시작된 겁니다.

"처음부터 잘못 된 거 없었어. 그냥 너만 없었으면 돼..."

잔득 삐쳐서는 혀인지 칼인지 모를 말들을 내던진 것이긴 하지만 동윤의 이런 대사가 정말 정곡을 찌른 거지요. 어쩌겠습니까. 학교란 공간이 싫어도 하루 왠종일 어울려야 하고, 머슴애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니 결국 이래저래 어울리다 보면 이런 조합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겁니다.

영화는 관객을 깜빡속이는 영리한 연출을 선보입니다. 후반부 현재와 과거가 묘하게 접하는 편집도 그렇고 초반에 단서들을 툭툭 오해할 수 있게 내던져서 관객으로 하여금 전혀 다른 이야기를 예상하게 하는 부분도 그렇고 말이죠. 리얼찬 대사/연기의 향연과 함께 이런 연출은 2시간 가까운 긴 상영시간에 머슴애들 토라진 이야기가 전부인 영화에 눈을 떼질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영화라고 할 순 없겠습니다. 특히 저같은 경우엔 개인적 과거사와 맞물리는 부분이 많아서 무척이나 힘들게 영화를 봤어요.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기태의 죽음은 차라리 잘됐다 싶어요. 기태는 결국 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대로 자라나 똑같은 어른이 되어서 계속 상처받으며 살았을 겁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떠넘기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사람이란건 쉽게 변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셋 중에 최악의 인간은 기태입니다. 자살하지 않았다면 결국 또다른 불행의 씨앗이 되었을 겁니다. 여전히 '왜 다들 나한테 이러는 건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거야?'라고 투덜거리면서 말이죠.

현실에서 정말 투신하는 건, 또는 투신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삶을 이어가는 건 결국 베키같은 아이들입니다. 전학가게 된 마당에 기태에게 쿨하게 내지를 수 있는 건 이 영화를 통털어 유일한 환타지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