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ncy's critic

뮤지컬 - 헨젤과 그레텔 (DIMF 공식초청공연)


 

헨젤과 그레텔 - 뮤지컬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딤프) 공식초청작인 '헨젤과 그레텔'은 본격 스릴러 뮤지컬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 말처럼 극은 미스테리가 얽힌 살인,납치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울 아현동 모처에서 불에 타 죽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톨루엔 계열의 희석제'인 신너를 촉매로 사용해 살아있는 상태로 불에 타죽은 시신은 정황상 살해당한 게 분명합니다. 화재로 인해 증거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시너통에 남은 지문의 임자이자 현장에서 발견된 생존자인 17세 소녀 유리는 목격자이기도 한 것 같지만 자폐증상을 가지고 있어 증언이 불가능해 보이고요 담당형사는 사건 해결에 난감을 표합니다. 한편 사건의 범인인 강식은 헨젤이라 부르는 손가락 인형과 대화를 나누는 이중인격적 행태를 보이며 무언가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인사건은 20년전 벌어진 일에 대한 그의 개인적 복수임이 드러납니다.

딤프 공식 프로그램에 실린 시놉은 미스테리의 실체나 반전을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 놓았는데요 극에서 딱히 숨기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고 반전이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알고 보는 것 보다 모르고 보는 게 좋을 듯한 부분입니다.

전체적으로 몰입도가 높았지만 스릴러란 쟝르나 다루는 이야기 탓인지 좀 무거운 객석 분위기였습니다. 박수가 나올법한 부분에서도 분위기 탓인지 다들 자중(?)하는 분위기였고요. 뭐 다른 문제점도 있었지만 이건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극은 크게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형사의 이야기, 진범인 강식의 이야기, 그리고 중간을 이어주는 퍼포먼스로 구성되어 이것이 번갈아 나열되는 형식입니다. 형사가 나오는 부부은 정극적 성격이 강하고 강식 이야기는 캐릭터 탓인지 사이코 드라마 같을 분위기가 있습니다. 퍼포먼스 같은 경우는 독특하긴 한데 좀 더 정제되면 좋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비슷한 퍼포먼스와 아무래도 비교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전체적인 극의 흐름을 정리하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은 톡톡히 한 듯 보입니다.

헨젤과 그레텔이란 제목과 달리 주인공 강식의 이야기는 그리 큰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의 복수 방법과 마녀의 죽음, 그리고 양부모에게 버려진 아이 같은 부분이 연결되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왜 하필 헨젤과 그레텔?'이란 의문이 생겨요. 극 중간엔 빨간두건도 언급이 되는데 이 경우엔 언급된 부분의 이야기(서연의 이야기)가 원전의 상징과 아구가 맞아 떨어져서 적절하긴 했는데 헨젤과 그레텔이란 큰 틀 안에서 다시 빨간두건을 언급해야 했나 싶기는 하더군요.

스릴러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사회문제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려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소아장기매매, 장애인차별, 왕따문제, 학교폭력 문제에 성폭력피해여성의 인권 문제까지 하나의 극에서 한꺼번에 언급하려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예로, 극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것 같았던 '유리'란 캐릭터는 상당히 낭비되었어요. 강식에 대한 증인역할과 주인공 형사가 사건에 적극 개입하게 되는 매개체 같은 기능적 역할 외엔 이렇다할 역할이 없어요. 그래서 마지막 유리와 형사의 엔딩은 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서연 역할과 합치거나 해서 좀더 유기적으로 전체 이야기에 얽히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선 좀더 긴장감을 고조 시키고 트릭을 적극 활용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아니면 뮤지컬의 장점을 십분 살리던가요. 특히나 '날 없는 칼' 같은 경우엔 뭐가 어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대체 그런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었지? 좀더 극적인 넘버와 퍼포먼스를 통해 클라이맥스를 고조시켰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서연은 왜 그런 최후를 맞아야 했나요? 그냥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느낌?

뮤지컬 넘버에 대해선 지식이나 경험이 일천한지라 뭐라 말하기가 힘드네요. 아주 인상적인 곡이 있었던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도 않았어요. 아리랑의 변주라던가 정신병원 장면에서의 넘버 그리고 주제곡의 리프라이즈 같은 건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다만 각 장의 엔딩이 넘버의 엔딩과 맞아떨어지게 하는 식의 구성이 필요하진 않았나 (모두 그럴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몇몇 넘버에서 박수를 치고 싶은데 바로 대사로 이어져 그럴수가 없었어요. 뭐 연출이 그러고 싶지 않은 의도라면 모르겠는데 계속 이런식이니 나중에 진짜 '이 부분은 박수 좀 쳐' 싶은 부분에서 관객들이 침묵하는 불상사(?)도 생기고...

제가 본 공연은 딤프 일정상 마지막 헨젤과 그레텔 공연(26일 6시공연)이었는데요 음향사고로 인해 초반에 극을 중단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MR이 첨부터 지직대더니 나중엔 그냥 계속 지직대며 배우들 목소리를 먹더라고요. 결국 중단하고 다시 시작. 계획에 없던 인터미션(?)에 관객들도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연기자나 스태프야 피말리는 상황이겠지만 관객입장에선 나름의 재미였지 않나 싶기도 해요. 이런 경험 쉽게 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개콘 녹화도 아니고 중간에 사고나서 끊고 다시 가는 걸 뮤지컬에서 보게 되다니요.. 아까 봤던 공연을 다시 재탕하는데 그게 또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배우 분들도 그런 부분을 잘 활용하셔서 분위기를 스무스하게 끌고가셨고. 사고에 대해선 연출자 분이 나와서 사과하기도 했고 극 종료후엔 딤프 측에서도 관계자가 나오셔서 정식 사과를 하시더군요. 거기다가 무려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공식초청작 'I got fired'티켓을 관객 전원에게 무료로 나눠줬어요. 전 토요일 3시 공연 티켓을 받았는데 확인해보니 VIP석.... ㅠㅠb 이쯤되면 사고가 아니라 로또네요. 한가지 아쉬운건 이미 만원의 행복을 통해서 이벤트 티켓을 구입한 공연이란 거. 이거 어쩌나... 그냥 두 번 봐?

중간의 퍼포먼스에선 블랙라이트를 활용하는데요 이 광선이 객석까지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블랙라이트만 켜지면 옆에 앉은 남자분의 하얀 와이셔츠가 빛을 내뿜어서 그때마다 웃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