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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thinking

2011.11.11 - 천년은 개뿔 백년에 한번 오는 날의 상념



빼빼로데이란 거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니고 같잖치도 않은 이벤트죠.

일단 특정상표를 앞에 내걸었다는 것부터 여타 데이들에 비해 차별화되고 그만큼이나 상업성의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근본도 없지요. 대체 이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설이 없어요. 가장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걸 예로들면 일부지역 여학생들이 시작이었다는 건데 이건 '오징어 놀이' 규칙이 어느게 정석인지 따지는 것만큼 허망합니다.

빼빼로데이가 불편한 건 그 근본없음 보다는 여느 '데이'들 만큼이나 잔인한 게임의 규칙 때문입니다. 연인들에겐 그저 이번 달도 붙어있어 어떻게든 치뤄야하는 수많은 날 중에 하나입니다. 동시에 자신들이 '사귀고 있음'을 서로에게 인증받고 세상에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날이지요.

아직 연인은 없지만 언제라도 연애가 가능한 '잠시 휴식중' 인간들에겐 고백을 할 (그래서 상대의 승낙을 부담없이 끌어낼 수 있는) 명분을 주는 날입니다. 특히나 빼빼로데이는 성별간 역할이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그래서 누가 누구에게 선물하고 고백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란 장점도 있지요.

굳이 고백을 할 사람이 없더라도 연애가능자 또는 연애경험자들에게 빼빼로데이는 그저 눈꼴시런 기념일입니다. 언젠가 자기가 겪었던 아름답거나 하이킥하고 싶거나 한 추억의 한 귀퉁이를 슬쩍 뜯어보는 날이거나 아니면 내년을 기약하며 결심을 다지는 날이기도 하지요.


결국 빼빼로데이를 저주하고 이날 하루 방콕하여 어둠속 기생충마냥 꼬물꼬물하는 인간은 '연애'가 불가능한 '연애불구자'들입니다. 이들에게 빼빼로데이는 영원히 자신에게 오지 않을 어떤 것을 누리는 타인들의 눈부심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가슴아파하거나 아예 눈을 돌려 장님마냥 살아야 하는 날인 거지요.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막일하는 소년가장이 무거운 짐짝을 나르며 교복입고 오늘 학원 시간을 체크하며 투덜거리는 동년배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분과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잔인하죠. 소년가장은 고학으로 검정고시를 보고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며 서울대 1등입학하여 변호사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애불구자들에게 그런 기회는 결코 오지 않아요. 영화속 환타지일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