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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work

수의근과 불수의근

이상하다. 이상한 일이다.

한 병, 두 병, 세 병... 세어나간더 소주병은 일곱이던가 여덟 근처에서 꼬여 버렸다. 그 후로도 두 시간을 더 퍼부었으니 못해도 열 병 이상은 퍼먹었을 것이다. (계산서를 확인해 보면 될 일이지만, 술자리가 파할 무렵 이미 누군가 계산을 한 후였다)

혈중 알콜 농도가 점오를 찍어, 피에서도 술 냄새가 날 지경일텐데도 이상하게 내 몸은 말짱했다. 녀석이 다시 칼을 휘두른다. 이번에도 유연하게 허리를 젖히며 궤적을 피해간다. 나를 노려보는 놈도 여간 성질이 난 모양이다. 술냄새 풀풀 피어오르는 늙다리 주정뱅이를 상대로 세 번이나 헛 손질이라니.

놈이 다시 내 몸을 파고든다. 잔뜩 허리를 굽히고 달려드는 것이 이번엔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아킬레스를 잘라 움직임을 줄일 셈일까, 아니면 대퇴정맥을 노려 실혈사를 꾀하려는 것일까. 온 몸의 근육이 뇌에서 전달하는 명령을 째깍째깍 처리하며 파고드는 놈의 어깨를 내리 누른다. 몸뚱이 아래에서 튀어나오는 칼이 보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역시나 대퇴동맥을 노리고 가랑이 사이로 들어온 칼날이 몸에 닿기 직전, 잽싸게 녀석의 손목을 잡아 방향을 틀어 버린다. 꾸엑이던가 끽이던가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주저 앉는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기 목을 관통해 뒷덜미로 튀어나온 칼끝을 손으로 더듬어보던 녀석은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그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펌프질 한 아드레날린의 부작용일까. 나는 상대의 시신 위로 토사물을 쏟아냈다. 스스로도 믿기 힘들 만큼 자유자제로 조종했던 수의근들과 달리 불수의근은 정직하게 알콜에 반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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