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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2011.6)

영문학에 지식이 전무하다 싶이 하기에 작가 헨리 제임스 역시 생경한 이름이지만 책의 제목 '나사의 회전' 만큼은 귀에 익다.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었고 고딕호러나 귀신들린 집에 관한 얘기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집어든 시공사의 최신 번역판으로 드디어 읽게 되었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고딕풍 유령의 집 이야기다. 여자주인공은 단신으로 호젓한 고택에 찾아오고 (이 책에선 가정교사다.) 거기서 아름다운 아이들과 친절한 집안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찰라 이상한 것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상한 것이라 함은 초자연적인 존재다. 가정교사가 남긴 기록을 모임에서 공개하는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는 하지만 여느 고딕소설들과는 차별화하는데 해설에서도 나와 있듯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서술이다.

작가는 화자인 익명의 가정교사의 감정에 이입하여 매우 세밀하게 의식과 감정의 흐름을 묘사한다. 하지만 그 묘사가 상세할 수록 오히려 이야기는 모호해진다. 의도적으로 공포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서술은 이야기를 더욱 따라가기 힘들게 만든다. 유령의 집이라 하면 물건들이 날아나오고 사람 한 둘은 죽어줘야 하는 요즘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외려 심심하거나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초반에는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뒤로가면 갈수록 특유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갔다. 물론 화자인 가정교사의 감정에 동화하기는 힘들다. 일단은 이미 2세기 전의 작품이라는 시간적 거리, 그리고 작가 특유의 난해한 서술, 거기에 더해 번역이라는 필터까지 완벽히 작품을 감상하기 힘든 때문일 것이다. 2세기 전 여자 가정교사의 사고의 흐름이나 심리를 짐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주인공의 심리는 종종 괴팍하게 도약하기도 한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재독하게 된다면 새로운 재미나 감상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해설에 따르면 작가 헨리 제임스는 후대 영미권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오늘 날 미디어의 귀신 들린 집이 이 책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 만은 확실해 보인다.

마지막 결말의 한 줄은 인상적이며 동시에 충격적이었다.

'고요한 저녁 시간에 남아있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고, 그의 작은 심장은 유령에게서 버림받아 이미 멈춘 다음이었다.'
가정교사는 정말 유령을 본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환영이었을까? 나는 아무래도 전자 쪽에 힘을 싣고싶다.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영화들 : <디 아더스>,<행잉록의 소풍>,<오퍼나지> 등등

나는 '자연'의 이치에 내 비밀과 문제점을 털어놓고 그 이치를 고려하며, 내가 겪는 기괴한 시련을 결국 당당하게 정면에서 맞서도록 하는 압박으로 여김으로써, 물론 그것은 비정상적이고 불쾌한 방향이지만 바꾸어 말하면 평범한 인간 도덕성의 나사를 한 바퀴 더 죄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그나마 지탱해 나갈 수 있었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