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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지하도의 비 - 미야베 미유키

지하도의 비




미야베 미유키
(2011.4)


 

지하도의 비


표제작, 작은 반전이 있는 소품이다. 처음 붉은 동백이 그려진 남자의 넥타이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아이디어가 좋다. 중반 이후까지도 검은 집이나 미저리 같은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말랑말랑한 로맨스적 결말이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다 읽고 나중에 곰곰히 곱씹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지만. (이야기 중에 나오는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


결코 보이지 않는다


괴담 느낌이 나는 소설이다. 택시도 잡히지 않는 심야의 정류장에서 만난 노인과 주인공. 노인의 회상이 전개되며 이야기는 천천히 현재의 상황과 맞물려간다. 일본 창작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한번 쯤 들었을 '붉은 실' 이야기의 변형인 '검은 실'이 나온다. 사랑을 이어주는 붉은 실이 있다면 검은 실은 죽음을 이어준다. 사자와 목격자란 관계로. 순환구조의 결말은 끝이 정해진 운명을 보는 것 같아 슬펐다.


불문율


오로지 인터뷰 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특이한 구성. 우리 인생이란 게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작은 흔들림으로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더라...


혼선


환타지 성향의 공포물. 자꾸만 걸려오는 악질적인 장난전화를 응대하는 남매인 듯한 두 남녀, 오빠인 듯한 남자는 장난전화를 걸어오는 스토커적 상대에게 자신이 들었던 장난전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반부 충격적인 비주얼은 이토준지의 몇몇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다.


영원한 승리


정말 소소한 우리네 이야기에서도 얼마든지 서스펜스와 반전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모의 장례식에 참석할 준비를 하는 주인공 히로미의 시선을 통해 이모와 외가 식구들의 관계등을 보여주다가 이모 집 우편함에 놓인 오래된 편지를 통해 이모의 과거에 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결말의 반전은 흥겹다. 마치 찜질방에서 동네 아줌마들 수다를 엿들은 것 같은 느낌의 단편.


무쿠로바라


무쿠로바라라는 특이한 이름의 남자와 얽혔던 한 인물이 그 이름에 집착하며 붕괴되는 모습을 관찰자인 형사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마지막엔 마치 저주처럼 무쿠로바라가 형사에게 각인되는 모습이 공포스럽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형사를 구한 것이 역시 '반장'과 '아버지'란 호칭의 변화라는 것이 무쿠로바라라는 호칭(이름)과 대응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안녕, 기리하라 씨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자면 기승전병식 구성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혹은 주변의 소리들이 사라진다면 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주인공 미치코의 시선에서 풀어가며 미스테리, 공포, SF 식으로 이야기가 변화하다 막판에 가선 좀 뜬금없는 결말로 이어진다. 생각하면 할수록 꼭 그래야만 했나 싶은 무리한 설정 덕에 뒷맛이 깔끔하진 않다. 그래서인지 굳이 이 이야기를 마지막에 넣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전체적으로 미야베 미유키란 작가가 단편에서 얼마나 넓은 스팩트럼을 선보였나를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집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