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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속죄 - 미나토 카나에

속죄




미나토 카나에


2011.3

작가의 전작이자 화제작 고백과 무척이나 닮은 소설이다. 인물들의 음영, 글의 주제, 구성까지 속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닮아서 자매같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야기는 모두 5인의 화자가 저마다의 사정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다. 고백이 인물 각각의 시점에서 그들의 고백을 들려주며 점진적으로 이야기를 키워갔다면 속죄는 과거의 한 시점을 기준으로 각각 부채꼴처럼 퍼져나가다 다시 한 점으로 뭉쳐진 인물들의 '속죄'에 관해 말하고 있다.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 그리고 에미리 모녀. 이들은 15년전 (왜 15년인지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벌어진 에미리의 죽음으로 엮인 인물들이다. 사에를 포함한 아이들 4인은 사건 당시 에미리와 함께 있었고 그녀를 유괴해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을 직접 목격한다. 그러나 범인은 당시에 결국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확실하다고 생각한 4인의 증인인 아이들이 '범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기 직전 에미리의 엄마는 4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충격선언을 한다.
“난 너희를 절대로 용서 못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그렇게 못하겠으면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속죄를 하라고. 그것도 안 하면 난 너희들에게 복수할 거야. 난 너희 부모보다 훨씬 더 많은 돈과 권력이 있어. 내가 기필코 너희들을 에미리보다 더 처참하게 만들어 놓을 거야. 에미리의 부모인 나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어.”
미성년 아이들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친구의 죽음, 그리고 죽은 친구 엄마의 충격적인 발언. 이것은 마음 깊숙이 트라우마로 자리잡아 15년이란 세월동안 성인이 된 이후까지 아이들을 괴롭힌다.

친구가 죽은 시점, 즉 어린 시절의 육신에 스스로를 가두어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음으로서 속죄하려던 아이. (프랑스 인형)
주변의 기대 속에서 결정적인 순간 뒤로 숨어버린 자신에 죄책감을 느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감으로서 속죄하려던 아이. (학부모 임시총회)
외모 콤플렉스 속에서 자신이 예뻐지려는 헛된 노력이 친구를 죽게 했다며  히키코모리가 되어 여자로서 자신을 포기함으로서 속죄의 삶을 사는 아이. (곰 남매)
4명 중 유일하게 자신은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이 없다고 여기던 아이마저 언니에 대한 질투로 어긋난 인생이 결국은 에미리의 죽음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열 달 열흘)
그리고 마지막 아이들에게 충격적 엄포를 던진 피해자 엄마의 속죄까지. (속죄)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 해도 관계자 모두의 인생이 파국에 치닿게 되는 구성은 작위적인 느낌은 있다. 게다가 그들이 얽히는 인생역정도 극중 '한류 드라마'같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극적이다. 하지만 일견 단순해 보이는 사건 이면에 인물 각각의 콤플렉스나 가정사가 뒤엉키며 증폭되는 구성이나 막판에 밝혀지는 범인의 진상과 동기에 대한 과거사까지 촘촘하게 얽힌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풀어지는 과정을 보는 재미는 전작 고백 때처럼 흥미롭다. 다만 고백 때에도 느낀 것처럼 너무 키워버린 이야기들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고 편한 선택을 하는 결말은 여전히 아쉽다. (원래 모든 갈등과 트라우마의 제공자였던 에메리 엄마는 종장에서 갑자기 기계장치의 신이 되어 버린다.)

스포일러성 정리
프랑스 인형 : 사에는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마을에 살았던 남자아이와 결혼한다. 하지만 남편은 과거 살인범이 저질렀다고 생각한 인형 도난 사건의 진범이었고 인형과 닮은 사에에게 변태적인 애정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었다. 결국 사에는 남편을 교살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자수한다.
학부모임시총회 : 마키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수영 실습이 있던 날 흉기를 들고 난입한 괴한을 저지하던 중 범인이 사망하고 처음엔 용감한 여교사로 칭송받다 이후에 불필요한 과잉방어로 살인자로 몰린다.
곰 남매 : 아키코는 곰 같은 자신이 예쁘게 치장한 날 에미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삶을 산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는 유일한 아군이던 오빠는 그러나 기이하게 뒤틀린 성격의 여자와 결혼 섹스리스로 살게된다. 결국 친딸을 추행하려던 오빠를 목격하고 그 모습에서 에미리 살인범의 그림자를 본 아키코에게 교살당한다.
열달열흘 :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던 언니의 남편과 관계를 가지고 임신하게 된 유카는 마지막으로 찾아간 형부의 집에서 위협을 받고 계단 아래로 형부를 밀어 중상을 입힌다. 이 광경은 에미리 엄마에 의해 목격된다.
속죄 : 에미리 살인범은 옛날 결혼까지 생각하다 헤어진 친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