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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하이킹 걸즈 - 김혜정


하이킹 걸즈

(2011.2)


김혜정


하이킹 : [명사] 심신의 단련이나 관광 따위를 목적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일.


요즘은 하이킹이라고 하면 소풍과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처음 하이킹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발달하는 기술 문명에 대한 반발로 정신적, 신체적 조화와 건강 유지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관광의 의미가 강해진 지금의 하이킹은 무언가 빠진 허전함이 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책 속의 소녀들이 경험하는 하이킹은 관광보다 '단련'에 초점이 맞춰진 보다 수행적인 행위다. 물론 그 목적 자체가 소년범에 대한 교화이기 때문에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련, 수행으로서 하이킹에 임하는 소녀들과 그들이 겪는 작은 모험은 소풍 정도로 즐겨오던 하이킹이란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70일간 실크로드의 일부를 도보로 경험하는 소설 속 교화활동은 청소년 범죄의 처벌과 그에 관련된 논의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미성년' 즉 아직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성숙한 인격체에게 자신의 잘못을 오로지 성인의 법으로 책임 지우는 것도. 그렇다고 마냥 미성숙한 존재로서 감싸며 보호하고 도는 것도 탐탁지 않다면 이런 식의 체벌적 수행활동을 어떨까? 은성과 보라의 하이킹은 수 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연속이다. 소년원으로 갈 것인가, 도보여행을 할 것인가라는 처음의 질문에서부터. 1200km라는 엄청난 여정을 도보로 완주할 것인가 중간에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타국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 제3의 선택을 할 것인가. 함께 걷는 동료를 친구로 받아들일지 그가 도망친다면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쫓아가 마음을 돌녀 놓을 것인지. 일상의 삶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선택 자체를 포기했던 아이들은 긴 여정에서 많은 선택들을 하고 그 결과를 혼자서 책임지며 미완의 아이가 아닌 책임 있는 하나의 인격으로 성장한다. 올바른 선택이란 없다. 선택의 결과는 결국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바꿔 말하면 자주적이며 책임감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성품과 능력이다.) 여정의 끝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미성년이다. 하지만 70일이라는 시간만큼, 그리고 1200km라는 거리만큼 성장해있다. 과거 실크로드를 개척했던 상인들처럼, 아이들보다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인솔자 미주처럼 무언가를 얻었고 무언가는 버렸다. 그리고 단순히 숫자로 표시되는 나이가 아닌 내면의 성장을 통해 아름다운 '구리'로 거듭난다.


실크로드라는 이국적 배경이나 도보여행이라는 로드무비적 설정을 완전히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특히나 주연 3인방과 그들의 과거, 갈등 구조가 지나치게 상투적이란 점은 친근한 느낌의 캐릭터와 쉽게 읽혀지는 문장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굳이 실크로드가 아니더라도 어느 배경에 가져다 붙여도 되겠다 싶을 만큼 개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왕 실크로드까지 보냈다면 거기서 활약하는 캐릭터에도 좀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중간에 등장하는 조선족 청년들은 지나치게 기능적이고 별 역할 없이 퇴장한 느낌이다.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데 공모전에 맞춰 좀 '안전지원'을 한 건 아닐까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