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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실종자 - 오리하라 이치




실종자
(2011. 1)

오리하라 이치

처음 접하는 작가지만 소개글을 보니 자국에선 '서술 트릭'을 활용한 작품으로 유명한 모양이다. 여지껏 접해본 책들 중 서술 트릭을 인상적으로 활용했던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십각관의 살인' 등을 떠올리며 읽어나간 결과 후반에 이르러 어느 정도 범인의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서술 트릭을 사용한 글이 보통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범인'의 정체를 교묘하게 숨기는/속이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과 단순한 구조의 십각관이나 그로데스크함을 강조한 살육에 이르는 병과 달리 이 책은 굳이 서술트릭과 그에 따른 반전이 아니더라도 끝까지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탄탄한 구조와 다층적인 플롯으로 구성되어있다. 15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유사한 실종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범과 거기에 따른 일본 소년법의 문제, 인간은 환경에 지배 받는가 아니면 태생적으로 악인은 따로 태어나는가 등에 대한 질문과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사건들의 배치도 적절하다.

베드타운으로 변한 사이타마 현 구키 시에서 한 달 전 행방불명되었던 여성의 시체와 함께 백골로 변한 다른 시체가 발견된다. 여성의 시체 옆에는 '유다의 아들'이라고 적힌 메모가 놓여 있고, 백골 머리뼈의 입에는 '유다'라고 적힌 메모가 끼여 있었다. 백골의 신원은 15년 전 행방불명되었던 중학생 소녀로 판명된다. 그리고 수색 결과, 역시 당시에 연달아 실종되었던 두 여성의 백골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새로이 두 명의 여성이 행방불명된다. 미궁에 빠진 15년 전의 '유다'사건과 현재 진행형인 '유다의 아들'이 저지른 범죄 사이에 연관은 있는 것일까? 범죄 논픽션 작가 다카미네 류이치로는 조수인 칸자키 유미코와 함께 일련의 사건을 조사하러 나선다. 다카미네는 먼저 15년 전의 용의자들을 만난다. 첫 번째 인물은 당시 20세로 폭주족이었던 현재 슬롯머신 가게 점장 시모야나기, 두번째 인물은 당시 27세 이발사 다마무라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수수께끼의 인물이 있다. 당시 15세였던 '소년 A'이다. 그는 다른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갔지만 소년법에 의한 보호 때문에 그의 정체와 그 후의 행적은 두꺼운 베일 속에 싸여 있었다. 이윽고 새로운 실종 사건이 터지고 다마무라가 체포된다. 하지만 다마무라는 범행을 부인한다. 그때 새로운 소년 범죄가 발생하고, 사건은 빠른 전개를 맞이한다. (해설 중에서)

복잡한 구성과 그 속에 교묘히 숨긴 서술트릭, 다양한 캐릭터들과 긴장감 가득한 사건들까지 야심차고 대단한 소설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분명하다. 트릭의 완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인물들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는 등 정보를 제한하다보니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종종 헛갈리거나 내용 파악이 힘들어진다. 이는 반대로 이 부분에서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너무 쉽게 트릭의 정체가 들어난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훌륭한 서술 트릭에 반하여 실질적인 사건의 정체는 좀 무리다 싶을 정도로 작위성이 느껴진다. 글 전체에 걸쳐 천천히 범인의 배경을 설명해놓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반전을 노리려다보니 범인/범인들의 동기가 희미해진 느낌이다. 극적 구성을 위해 캐릭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부분도 종종 눈에 띈다. 특히나 중요 캐릭터 하나가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는 중요한 증거를 차마 처분하지 못하다가 덜미가 잡히는 부분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작가는 'ㅇㅇ자'라는 형식의 제목과 동일 캐릭터의 등장 등을 통해 연작 형식의 소설들을 쓴 모양이다. 특히 이 책 실종자와는 형제뻘 또는 프리퀄 같은 역할의 원죄자라는 책에 관심이 간다. 역시나 서술 트릭을 내세운 책인 모양인데 이번엔 어떤 이야기와 트릭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흥미롭고 놀라운 책임을 다시 실감한다. 해설에서 이런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읽는 사람이 이렇게 머리가 아픈데 쓰는 사람은 오죽할까?

(아는 척 하기 위한 스포일러 성 요약 : 15년 전 소년A는 논픽션 작가 다카미네다 부자간의 편지 중 현재의 소년A 유스케와 아버지 사이의 것이 분명한 부분을 제외한 것은 다카미네 부자간에 오고간 것이다. 하지만 15년전 살인 사건의 진범은 다카미네가 아닌 그의 어머니다. 신경이 예민하고 약에 의존해 병든 그녀는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 그를 '유다'라고 지칭하며 막무가내로 젊은 여자들을 테러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안 남편은 죽은 여자들의 시체를 자기 집 바닥에 매장했고 결국엔 살인을 막기 위해 아내마저 죽이고 같이 매장한다. 다카미네는 현재의 실종사건 조사중 필연적으로 15년전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슬롯머신 사장과 이발사에게 정체를 들키고 그들의 발설을 막기 위해 살인을 한다. 실종된 여자들 중 다다 유카리를 제외한 사람은 자신이 직접 범인이 되어 논픽션을 쓰려는 다카미네의 악의에 살해된 것이다. 다카미네를 공격한 것은 아들마저 범죄를 저지른 것을 안 아버지의 범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