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reading 100 books

안녕, 인공 존재! - 배명훈

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2011. 10)


 

타워라는 인상적인 장편으로 처음 접한 작가의 단편집이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빠르게 읽힌다. 그런데 이야기를 요약하자니 힘들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꽤나 깊어 보인다.

크레인 크레인 - 처음 발표

비행학교를 다니던 중 갑자기 가업을 이어야 한다며 훌쩍 중국으로 떠난 동기 은경에게 주인공은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녀를 잊지 못하던 그는 결국 아내에게 거짓말을 둘러대고 중국으로 향한다. 어렵게 찾아간 그녀의 마을에서 처음 그를 맞은 건 버스를 통째로 들어올려 절벽위 마을까지 끌어올리는 거대한 크레인, 그리고 크레인을 운전하는 것은 은경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말하던 가업이고 마을에선 단순한 크레인 운전수가 아닌 '무당'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안다. 기중기는 이 마을의 설화에 등장하는 신이고 그것을 운전하는 자는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신성한 임무를 지니는 것이다. 결국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에 죽음을 택한 순간 느닷없이 등장하는 기중기의 신은 해설에서 언급했듯 말 그대로 기계장치의 신이다.



누군가를 만났어 - 누군가를 만났어, 행복한 책읽기, 2007


고고심령학이라는 엉뚱한 가상의 학문이 등장한다. 오래전 죽은 영혼들의 흔적을 고고학적 관점에서 찾아내고 측정하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 캠프를 차린주인공 일행 그리고 뒤이어 공룡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2차대전 당시 투하된 불발탄을 제거하기 위해 각각 중국, 일본에서 구성된 탐사팀들이 같은 장소에 모인다. 먼 옛날 공룡들이 한 곳에 모여 죽음을 맞게 하고. 이상하게도 두번 연속으로 폭탄을 불발시킨 이 장소엔 영혼들 역시 비정상적으로 모여있다. 이것이 모두 우연인가. 아니면 동일한 원인이 있기 때문인가. 그 해답이 바로 주인공이 홀로 마주한 '누군가'의 흔적이다.



안녕, 인공존재! - 문학동네, 2009년 겨울


우주비행사 이경수는 자살한 신우정이 자신 앞으로 무언가를 남겼음을 전해듣는다. 전해받은 물건은 신제품 개발 담당으로서 기존의 통념과 달리 사용자와 제품을 연결하는 감각들을 줄인 획기적인 기획으로 히트상품을 연달아 개발하던 우정이 마지막으로 개발한 제품 '조약'이다. 아무런 입력장치도 없이 매끈한 조약돌 모양의 장치는 개발한 회사에서도 컨셉을 잡지 못한 모호한 '작품'이었다. 어느날 훌쩍 세상을 떠난 친구, 정체모를 조약이라는 제품, 그리고 우주비행사로서 임무 수행이 평행적으로 진행된다. 작중에서 데카르트를 직접 인용하며 회의론적 존재론과 조약을 연결짓는데 모든 감각이 차단된 조약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위한 코드의 비예측적 에러로 스스로의 존재마저 사라지는 '공백'의 순간 실질적 존재로 탄생한다는 부분과 죽음으로서 (사라짐으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다시근 존재하는 망자의 이야기가 중첩된다.



매뉴얼 - 유,로봇,황금가지,2009


평범한 전화번호 매뉴얼을 마치 전설인양 전혀 다르게 (하지만 유사하게) 읽어내려가는 아이, 그리고 고대의 예언이 알고보니 한글로 적힌 (바로 그) 전화번호 매뉴얼이라는 이야기. 언니 부부의 죽음과 남겨진 조카를 거둬들이는 미혼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



얼굴이 커졌다 -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 시작, 2009


처음엔 표적의 얼굴이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 세상 모두의 얼굴이 갑자기 커져 버린 (또는 커져 보이는) 일을 겪게 된 암살자의 이야기.



엄마의 설명력 -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창비, 2007


천문학자인 엄마의 엉뚱한 설명으로 고등학생이 될때까지도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아버지는 언젠가 집에서 엄마와 정사를 나누던 백인 과학자라고 믿어왔던 묵희. 하지만 사람들은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돌고 있고, 묵희 아버지는 동남아인일 것이라 말한다. 엄마에 대한 의심, 자신에 대한 의심. 엄마의 '구라'를 중심으로 계속되는 반전은 마지막에 독자마저 멋지게 속인다.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 웹진, 문장, 2010


변신합체 로봇에 대한 로망을 극단으로 몰고가면서 전체주의와 집단자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변신로봇의 개발 배경에 대해 서술하는 초반부가 재미있다. 사실 이족보행 로봇이나 변신, 합체하는 로봇의 구조는 실전에서 그리 유용하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왜 그것을 이야기에 끌고 들어왔는지에 대한 이유도 제시한다. 처음엔 로망에서, 그 다음엔 비용적인 측면 때문에 그리고 에너지 대비 출력에 대한 기하급수적 증가양상에 따른 효율이 이유가 된다. 마지막에 등장한 적의 정체는 무엇일지 여운을 남기며 종교적인 상상까지 가능하게 한다.



마리오의 침대 - 웹진, 거울, 2009


너무나 사랑하는 소울메이트의 단 한가지 단점인 코골이를 극복하는 마리오의 이야기다. 다른 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중력이 원통의 바깥으로 작용하는 일반적 중력발생장치의 구조가 이런 식으로 활용될 수도 있구나 싶으면서도 코골이의 매커니즘을 생각하면 차라리 무중력에 떠다니는 침낭을 이용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나의 개념을 두고 거기에서 뻗어나간 이야기를 중첩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즐기는 듯 하다. 하지만 내 경우엔 스키마가 부족한 분야에선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 이야기를 완전히 즐기지 못했다. 읽으면서 자신이 똑똑해지는 것 같은 글들이 있다면 배명훈의 글은 자꾸 읽을수록 내가 멍청하게 느껴지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 그래도 서사 자체나 농담의 질이 좋기에 개념이나 주제에 대한 고민 없이 가볍게 읽어도 좋을 것이다. 누구 말처럼 시뮬라시옹을 모른다고 매트릭스가 재미없는 건 아니듯이.

말미의 작가의 글을 통해 배명훈이 공군 행정장교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 기인지 궁금하다. 나이로 봐선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설마 동기?!!

'2011. reading 100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수맨이 나타났다! - 김민서  (0) 2011.03.10
실종자 - 오리하라 이치  (0) 2011.03.10
독재자 - 듀나 외 8인  (0) 2011.03.10
기억은 잠들지 않는다 - 양지현  (0) 2011.03.10
유령여단 - 존 스칼지  (2) 201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