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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마이 시스터즈 키퍼 - 조디 피콜트


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 피콜트

(2011,36)


13살 안나는 계획적으로 태어난 이른바 맞춤형 아기입니다. 전골수구백형병이란 희귀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언니 케이트에게 적합한 기증자가 필요했던 부모가 케이트와 가장 적합한 배아를 선택해 아이를 낳았던 거지요. 덕분에 말도 못 뗀 어린아이시절부터 안나는 언니 케이트에게 자신의 피와, 골수를 나누어 주는 시술을 수차례 받게 됩니다. 그에 따른 고통과 부작용도 따라서 겪게 되고요. 그리고 합병증으로 인한 신부전으로 다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케이트에게 신장을 나누어 줘야 하는 이전과 달느 침습적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을 앞에 두고 안나는 유명 변호사 켐벨을 찾아가 부모로부터의 의료해방을 위한 소송을 부탁합니다.

소재부터가 논쟁적입니다. 유전자 조작 아기, 형제를 위해 만들어진 아이, 장기이식, 소송에 얽힌 부모의 권리와 자식의 권리 같은 것 말이지요. 생명윤리, 미성년의 법적 결정권, 부모의 자식에 대한 권리를 법이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등에 대한 논의로 진행될 소재들이고 책은 각각에 대해 공평하게 건드려주고 있습니다. 소재 자체로도 압도적이고 균형추를 맞추기도 어려울 것 같은 이야기지만 작가는 신기할 정도로 유려하게 갈등을 끌고 나갑니다.

소재가 자극적이라고 국산 막장드라마 같은 걸 기대해선 안됩니다. 자칫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였다면 출생의 비밀은 꼼꼼하게 숨겼을 것이고, 아이는 격하게 반항할 것이고, 관계자들은 자기 잇속만 챙기려다 파국으로 치닫거나 막판에 급하게 봉합하겠지요) 모든 인물들은 굉장히 설득력있는 모습으로 행동합니다. 안나는 고통이 싫어서, 신장 수술이 무서워서 혹은 사춘기라서 그런 소송을 벌인 것 같고. 변호사 켐벨은 화제성 사건을 수임함으로서 변호사로서의 명성을 높이고 싶어서인 것 같고. 케이트는 가련한 시한부 인생으로서 상황에 휩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고. 등등등 표면적으로 뻔해보이던 인물들의 행동과 갈등이 후반부에 그 진상이 드러나게되면 반전과 같은 의외성과 함께 독자의 심금을 울리며 따뜻함을 느끼게 합니다. 심지어 변호사 켐벨마저 말이지요!

하지만 결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번역자의 말처럼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결말이지만 다른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끝내버리기엔 독자가 책을 통해 얻게 된 안나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단 말입니다. 그냥 디즈니식으로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데요'라고 끝내주심 안되나요. ㅠㅠ

이 책을 알게 된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동명의 영화 때문입니다. 예고편을 통해 접한 스토리가 흥미로웠거든요. 정작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배우들이 워낙 인지도가 높다보니 책을 보는 내내 영화 캐스팅들이 글 속에서 움직이는 듯 하더군요. (제가 읽은 책은 아예 표지가 영화 포스터였어요) 영화정보를 통해선 '유전자 조작'이니 '생명윤리'니 하는 이야기 때문에 SF작품이거니 했는데 (물론 충분히 소프트한 SF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만) 책을 읽으면서 분위기가 무척 달라서 좀 놀라기도 했고요.

작가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상당한 분량 (550페이지) 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끼긴 커녕 여건만 허락되었다면 앉은 자리에서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각 페이지가 흥미롭게 넘어갑니다. 묘사라던가 비유만이 아니라 대사의 질이나 농담 등이 무척 좋은데 번역이란 필터를 거쳐 이정도라면 원어로 읽을 때 더욱 재미이겠다 싶더군요. 살짝 스티븐 킹도 생각나고. 단점이라면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말빨이 좋아서 때로는 주인공이 13살이 아니라 23살 대학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