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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붉은 손가락

히가시노 게이고

(2011, 35)

외견으로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통해 현대 일본의 사회구조적 문제점과 함께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반전이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조명기구 회사에서 일하는 중년의 가장 아키오는 퇴근무렵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어서 와달라는 채근에 도착한 집, 정원에는 어린 소녀의 사체가 방치되어 있고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은 사회부적응 증상을 보이는 아키오의 아들 나오미입니다. 믿기지 않는 눈앞의 현장, 그리고 이후 벌어질 일들에 대한 끔찍한 예상들 하지만 범인인 나오미는 방에 틀어막힌 채 남의 탓만 하고 있고 아내는 아들만 싸고 돕니다. 결국 사건을 은폐하기로 마음먹고 아이의 시체를 근처 공원에 내다버리지만 곧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들고 아키오 부부는 아들의 살인죄를 덮기 위해 끔찍한 거짓말을 꾸미기에 이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작품은 트릭이나 추리에 힘을 모으는 본격적 작품 보다는 사회시류적 소재들을 다루며 인간 본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사회파적 분류에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아키오 가족은 도시화, 햇가족화, 분열화의 양상 속에 현대 일본 가정의 모든 문제를 퍼담은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먹고 사는 일에 휘둘려 가정을 돌보지 않은 채 돈버는 기계로 전락해 결국 바람으로 애정을 확인하려는 위기의 중년가장, 소극적으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하고 오로지 자식만 바라보지만 진짜 자식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는 어머니,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무책임하고 남의 탓만 할 줄 아는 사회부적응자 아들 그리고 고령화 사회에 따라 이런 가족들에게 의탁할 수 밖에 없는 치매노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고 딱히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살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자꾸만 꼬여가는 현실을 모두가 외면한 결과 겉모습만 유지하고 있는 콩가루 가족에게 살인사건이라는 거대한 문제가 던져지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여기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한 매력적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여 인간적 면모를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는 거죠.

사건의 진상을 초반에 모두 드러내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아키오 가족과 가가로 대변되는 경찰의 두뇌싸움 양상으로 진행됩니다. 아들의 살인을 숨기기 위해 아키오가 떠올리는 방법은 그럴듯 하지만 동시에 절대 용서하기 힘든 끔찍함이 있습니다. 별다른 트릭 없이 정공법으로 흘러가던 미스테리는 막판에 이르러 한 번의 반전을 준비하며 의외의 진상과 함께 또 하나의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워낙 불편한 것이라 책을 덮고 나서도 찜찜함을 지우기 힘듭니다.

본 사건과는 별개로 가가 형사와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사촌의 시선에서 관찰되며 작은 반전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가가 형사 부자의 이야기는 아키오 모자의 이야기와 비견되며 '보는 것과는 다른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보여줍니다.

아키오 가족은 일본이 아니라 작금의 한국, 어쩌면 우리의 이웃이나 친척에게서 볼 수 있는 현실적 모습들의 집합입니다. 살인이란 극단전 상황이 없다뿐이지 안에서 부터 곪아가고 있는 이런 가족상을 우리는 쉽게 접하며 살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소설 속 이야기는 살인이나 트릭과는 별개로 서늘한 공포를 전달합니다. 원래는 단편이었던 작품을 6년이나 지나서 장편으로 개작한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지 않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