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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설게자들 - 김언수


 

설계자들

김언수

(2011,37)

도서관으로 불리는 비밀조직에서 암살자로 일해오던 래생은 최근의 두 표적을 두고 이유 모를 심적 갈등을 겪습니다. 하나는 오래 전 권력 상부에 앉으면서 도서관을 부리던 장군이고 다른 하나는 한 손으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고급 콜걸입니다. 장군은 래생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인 도서관의 수장 너구리 영감과 친밀하던 사이이자 오래된 권력의 말로를 상징하고 콜걸은 래생이 인정하는 별종 킬러 추가 자신의 목표임에도 살려준 여자입니다. 쓰레기통에서 인생을 시작했고 도서관에서 성장한 래생으로선 별다른 선택지도 없이 이어온 킬러의 삶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두 타깃 앞에서 래생은 '설계자들'이 내려준 지령을 어기고 지정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살해하며 그의 킬러로서의 삶도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와중 래생은 자기 집 변기에 설치된 사제 폭탄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언수는 전작 캐비닛에 이어 역시나 특이한 상상력을 덧붙인 가상의 '뒷세계'를 설정합니다. 자연스럽게 권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루어지고 역시나 당연하다는 듯이 짝으로 캔맥주를 사서 마시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일단 그의 소설은 쟝르적 재미로서도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이 소설 설계자들은 현대의 킬러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퓨전 무협소설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추는 로닌이고 한자는 명문에서 독립해나간 간신이고 이발사는 전설의 고수이고 정언은 개방파 소속 정도 되는 거죠. (이런 해석은 스워드 앤 매직 판타지의 세계로도 적용할 수 있겠지요)

SF적 설정을 뒤집어 쓴 캐비닛처럼 이 소설 설계자들도 그래서인지 쉽게 읽힙니다.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는 거지요. 특히나 마지막 호텔에서의 장면은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오락적 외양 아래에 깔아놓은 주제나 질문들은 다시금 곱씹어보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질문이나 우화로도 읽히고 우리의 삶에 대한 운명적 결정론과 개척론에 대한 고민으로도 읽힙니다. 캐비닛에서와 같이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깔끔한 결론은 아닙니다. 그냥 엉뚱한 소풍길에 고생만 하고 돌아가듯 래생의 이야기는 내생으로 유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