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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커플즈 - 정용기


 

커플즈

 


정용기


제목만 보고 예전에 만들어진 '싱글즈'의 속편격 기획인가 싶었습니다. 예고편을 보고선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고요.

흠.. 일단 로코물인 건 맞습니다. 타겟 관객도 아마 말랑말랑 연애담을 보고싶어하는 젊은 여성이나 영화관 데이트 나온 연인들이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로코물로 분류하기엔 아쉬운 야심이 담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메인이 되는 다섯 명의 남녀들이 얽힌 하루동안의 일을 세 파트로 나누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보입니다. 약혼녀에게 버림받고선 요란벅쩍지끈한 하루를 겪으며 새로운 사랑에 눈뜨는 늙다리 남자, 생각지도 못한 인연에 가슴 설레는 젊은 여경, 앞서 나온 늙다리를 속여먹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러 갔다가 돈에 홀려 소동을 벌이는 젊고 싱싱한 꽃뱀 아가씨, 순정파 건달, 그리고 차가운 밤의 사나이 (풉)



여기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조연 커플 세쌍이 등장해서 이야기에 조미료 겸 아교 역할을 합니다. 일단 영화의 주된 전개 방식은 같은 시간 반복해서 보여주기입니다. 같은 시간에 벌어진 사건을 우선 A란 인물의 시점에서 보여준 뒤 나중에 다시 B의 관점에서 다시 복기하는 식이지요. 예, 구로자와 아키라 운운 하실거란 걸 압니다. 이미 수도 없이 울궈먹은 수법이지요. 하지만 영화는 이런 장치를 기발하다고 생각하며 안주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평범한 로코물 이상의 '야심'이 느껴지는 각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시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바뀌고 그건 세 파트로 루즈하게 나뉘어진 옴니버스의 분위기와 결합하지요. 전체적인 어조는 코미디입니다. 처음 이야기는 전형적인 로코물이에요. 우연히 만난 남녀가 하루동안 요상스런 소동에 휘말리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는 거지요. 두번째는 느와르 패러디입니다. 자신을 어두운 도시의 야수라 생각하는 흥신소 사장이자 앞서 나온 김주혁의 친구인 봉남이 1억원 돈가방 사건에 얽히면서 하룻밤 사이 죽을고비(?)를 넘기는데 느와르 적인 나레이션과 음악(영웅본색!)이 깔리지만 알고보면 찌질한 흥신소 사장님의 판타지더라 그런거죠. 마지막으로 이시영이 연기한 꽃뱀 아가씨 나래가 조폭 두목의 돈을 훔쳐내려다 일이 꼬이는 미스테리 치정극(!!)인 척 하는 코미디입니다.

이야기들이 개별적으로 봐도 무척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일단 코미디가 깔짝깔짝 끊임없이 터져주고 인물들은 개성이 분명하며 이야기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사실 하루에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옴니버스 형식이란 틀에서 억지나 우연의 연발을 예상해 볼 수 있겠지만 장치들은 코미디를 위한 요소를 제외하면 나름 필연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점수를 줄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근래 본 국산 로코물 중에 상위권에 랭크시킬 만한 훌륭한 각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야심을 가지고 치밀하게 부닥친 흔적이 여기저기 꼼꼼하게 숨어있어요. 연출 역시 이런 꼼꼼함을 최대한 살려주고 있고요.

연기도 좋습니다. 일단 좋은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을 연상시키는 이윤지의 발성이나 맹한 연기가 사랑스럽습니다. 이시영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해서 빵빵 터지는 코믹 연기를 보여주고요. 택시기사나 브릿지 커플들 같은 조역들 연기도 아주 좋아요.

차가운 도시 야수 복남 역의 오정세는 돌아이 시절 전영록이 생각나네요. 닮았어요. 물론 이소룡급의 전영록 바디와 달리 오정세는 이티를 닮은 아저씨 몸매지만.


보통 예고편 보고 잔뜩 기대했다가 본편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정반대네요. 예고편 보고 별 기대 않고 봤다가 아주 즐겁게 극장문을 나섰어요. 잘 만든 로코물 보고싶은 분에게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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