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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인 타임 - 앤드류 니콜


 

인 타임

 

 

앤드류 니콜


인 타임은 시즌마다 하나 이상 씩은 만들어지는 것 같은 설정놀음 SF의 하나입니다. 패러럴 월드나 근미래 또는 아예 환상의 공간을 상정하고 특이한 설정을 가져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거지요. 이퀼리브리엄, 가타카, 다크씨티, 데이브레이커스 등등... 이야기를 구축하는 기본 틀은 같지만 결과물은 매우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꾸준히 애용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미래인지 아니면 패러럴 워드인지 모를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25세 이후 노화를 멈추고 딱 1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25세 이후의 삶은 시간으로 환산되고 그 시간이 통화를 대신한 세계인 거죠. 그리고 팔뚝에 13단위 숫자로 표시되는 시간은 자유롭게 거래되며 화폐의 기능을 하지만 만약 이 숫자가 0으로 떨어지게되면 그 사람은 심장이 멈추며 죽어버립니다.

매우 독특하면서 직설적인 설정입니다. 개인의 시간, 그러니까 삶이자 잔여수명 자체가 돈의 역할을 하는 세계라니 현실의 극단적 비유가 가능합니다. 정보의 비대칭, 99%의 고혈을 빼내어 성주마냥 군림하는 1%의 자본가, 그리고 그런 자본의 규칙에 밀려나 말 그대로 죽어나가는 빈민들 (말 그대로 하루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장모, 와이프, 딸... 우린 모두 25살!)

이런 설정의 규칙들과 매력적 설명들은 초반부에 적절히 배치되어 흥미를 끕니다. 예고편에서 연인사이 같아 보이던 두 인물이 사실은 25세의 외모를 그대로 유지한 모자관계였다던가 커피 한 잔에 몇 분, 하는 식으로 시간을 거래하는 모습. 시간 관리를 못해 길바닥에서 죽어버린 사람 등등. 빈민가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위태로운 삶을 사는 주인공 윌 살라스가 호주머니에 백 년의 시간을 들고 다니는 부자를 우연히 만나 상류층의 세계로 넘어가고 시간(=생명)을 걸고 벌이는 위험한 도박을 벌이기까지 전형적이긴 하지만 긴장의 호흡을 적절히 조율하며 관객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런 설정의 힘이 떨어지고 오히려 이야기가 설정에 말리는 경향이 뚜렷해져요.


(시시하게 돈 걸고 도박 안한다. 적어도 생명 정도는 걸어줘야지...)

이런 설정들이 대게 그렇듯 이야기는 주인공이 부조리한 체계를 전복하고 극복하는 것으로 흘러갑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시간을 들고 무작정 부자세계로 들어간 윌은 거기서 매력적인 부잣집 아가씨를 만나고 어찌저찌 동행이 되어 도망자의 신세가 되지요. 그리고 한정된 시간을 가지고 소수의 권력자(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삶은 멋대로 조종하며 신처럼 행세하는 세상에 누구나 공평한 시간을 소유할 수 있도록 혁명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보통 이런 시점에서 여타의 영화는 조력자들을 등장시킵니다. 체제 내부에서 고민하던 권력가라던가 혁명을 위해 준비하던 지하세력이라던가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엔 그런게 없습니다. 아니 있기가 힘든 거지요. 시간의 통제는 곧바로 생명의 통제입니다. 지하세력들이 생기려면 이 시스템을 우회하거나 벗어나야 하는데 워낙 극단적 설정의 완벽한 시스템인지라 이런 극렬분자들이 존재하기가 힘들어요. 당장 먹고사니즘 때문에 아니.. 이건 먹는건 둘째 치고 시간을 벌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이니 따른 곳으로 눈돌릴 여유가 없는 거죠. 시스템 내부의 조력자는? 그러기 위해선 시스템의 부조리가 극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대변인이자 윌의 적인 와이즈의 논리는 제법 그럴듯 합니다. 누구나 영생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지구는 인간으로 넘쳐나 공멸할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속 세계는 단지 시간(생명)을 거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그런 능력을 세계의 모두가 누리고 있다는 겁니다. 설정이 이야기를 잡아먹기 시작하는 거지요.

이런 상황에서 윌의 선택은? 고작해야 좀도둑질입니다. 와이즈의 시간(돈)을 뺐어서 빈민에게 나누어주는 의적질이죠. 마지막 이야기의 해결도 무언가 대단한 척 연출하지만 이 행위를 벗어나지 못해요. 엄청 많은 시간을 가지면 이걸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누구는 하루살이 누구는 영생이란 비대칭적 상황을 타파하자는 거지요. 이건 임시적 미봉책이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진짜 혁명은 그 놈의 징글징글한 팔뚝의 타이머를 뜯어내는 것일텐데 그렇게 되면 다시 와이즈가 꺼낸 문제로 돌아가는 거죠. 모두가 영생을 누리길 원하고 그럴 수 있는 세상에서 유한한 삶을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영화를 보며 문득 요즘의 국내 정세가 떠올랐습니다. 때마침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맞물려 있는 시기였고요. 와이즈 가문으로 대변되는 뉴그리니치의 인물들은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진영과 겹쳐집니다. 자신들이 보유한 것을 유지하려하고 변화에 질색하며 느릿느릿 행동하는 인물들이죠.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수준의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자꾸만 더 재산(시간)을 불려 영생을 누리려(권력을 이어가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윌은? 단순적용이라면 안철수, 박원순으로 대변되는 진보세력, 시민세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권력자들의 계산법이죠. 영화에서 윌이 벌이는 의적질은 그들이 말하는 부정적 포퓰리즘이고 종북좌파라고 멋대로 이름붙인 사회주의자적 발상입니다. 영화 속 윌의 모습은 일견 멋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진 않죠 (심지어 영화에서도 완전한 해결책이 될수 없었음을 앞서 말했습니다) 딴소리긴 하지만 영화에서 제시되지 못한 해결책을 그들이 제시해주길 또는 그들과 함께 우리 시민들이 만들어가길 바래봅니다.

미드 화이트칼라의 닐 카프리(매튜 보머)와 빅뱅이론의 레너드(자니 칼락키)가 각각의 이미지에 걸맞는 배역으로 등장하는데 이 두사람이 은근 닮아보여서 당황했습니다.ㅋㅋ 그리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연기한 주인공 윌의 엄마 역으로 하우스의 13, 올리비아 와일드까지 나오니 무슨 미드 올스타쇼 보는 느낌도 나더군요.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금발 모습만 봤는데 브루넷도 어울리네요. 영화 내내 인형이 걸어다니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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