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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삼총사 (2011) - 폴 앤더슨


 

삼총사

폴 W.S. 앤더슨



짧지 않은 영상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여러차례 재해석되어지는 고전들이 있습니다. 로빈후드, 춘향전, 제인에어, 로미오와 줄리엣 등등. 이들 원작이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익숙함'일 것입니다. 일반 대중들은 난해하거나 너무 새로워서 받아들이기 거북한 이야기보다 익히 들어 알고 있고 친근한 이야기들에 끌리기 마련입니다. (원형적 서사가 여전히 먹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상하듯이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익숙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뻔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거든요.



이 영화 삼총사는 여지껏 수 차례에 걸쳐 영화화 되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을 어린이용 문고본으로만 접했고 기존 영화/만화들을 본 게 전부인 저라도 그 줄기가 되는 스토리는 줄줄 읊을 수 있지요. 익숙함이며 동시에 식상함입니다. 삼총사 신작이 만들어진다는 소식과 스틸컷 등을 접했을 때 처음 가진 느낌은 불안함이었습니다. 일단 3D란 타이틀이 붙은 걸 본 순간 최근의 3D 열풍에 동승하려는 졸속 기획은 아닌가 의심부터 간 거죠. 게다가 감독은 앤더슨이고 나오는 배우들 역시 어딘지 어중간한 구석이 있었고요. (밀라 요보비치는 당연히 끼어있는 세트상품 같은 느낌이었고...)

예고편은 또 어땠나요. 공장에서 찍어내듯, 아니면 신혼여행 앨범 만들듯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앤더슨 표 영화가 삼총사를 만난 괴작의 풍모를 강하게 풍겼잖아요. (삼총사에 비행선? 여전사 밀라디 풉!)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건 예상외의 성찬이었습니다. 일단 스토리는 예상과 달리 거의 원작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비행선이 스리슬쩍 끼어든 정도랄까요. (그마저도 어인 일인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상영시간 내내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단은 원작의 매력을 십분 살린 캐릭터들과 그런 캐릭터를 훌륭히 살린 각본/연출의 힘이 큽니다. 감독 특유의 액션들도 적절히 버무려져 이야기의 흐름에 힘을 실어주고요. 사전에 뻔하거나 식상할거라고 생각했던 시퀀스들은 대부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홍콩/중국의 와이어 트릭과 쿵푸 액션의 도입, CG기술을 활용한 공간적 배경의 확장 같은 아이디어를 삼총사 이야기와 결합해 보겠다는 시도는 새로운 게 아닙니다. 10년 전 '머스킷티어'(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3086)란 영화에서 이미 시도되었던 거지요. 당시 삼총사들이 황비홍 액션을 벌이는 장면은 한국관객 입장에서도 신기한 구경거리긴 했지만 영화 자체는 그리 큰 매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이런 시도들이 상당히 괜찮은 성과를 보여주더라 이겁니다.



거기에 초중반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보는 듯한 설정과 이야기 구조를 가져옴으로서 익숙함을 극복하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도도 보여줍니다. 위기 상황이 싱겁게 해결되는 맛은 있지만 적어도 그 이전까지 분위기를 잡는 부분은 매력적입니다. 목걸이를 되찾기 위해 영국으로 돌입하며 계획을 짜는 장면에서 삼총사와 달타냥은 IMF요원이나 A특공대 처럼 보입니다. (그런 연유로 아토스에게서 이단 헌트나 한니발의 아우라를 느낀 사람은 저만이 아닐겁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하나의 캐릭터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배경미술과 장치미술들의 역할도 큽니다. 익숙한 공간을 CG로 재창조한 배경들은 게임이나 만화 속 가상공간을 보는 듯 하면서도 묘한 현실감이 공존합니다. 무엇보다 의상이나 건물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적절히 현대화하고 환타지화 했는데 자칫 유치할 수도 있는 시도가 상당히 적절한 선을 유지한 것 같아요.

속편을 예고하는 듯한 엔딩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떠오른 것은 이전의 삼총사 영화보다는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였습니다. 물론 올랜도 블룸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는 곳곳에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의식하고 벤치마킹한 듯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성공적이고요. 올해 나온 캐러비안의 해적 4편과 비교한다면 전 이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밀라 요보비치는 정말 매력적으로 나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말이지요) 제목이 삼총사고 스타급 배우들이 나오지만 정작 주인고은 그녀가 연기한 말라디가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데뷔가 워낙 빨라서 그렇지 이제 겨우 30대 후반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도 이런 캐릭더도 계속 보여줬으면 합니다.

버킹엄 역으로 악역을 선보인 올랜도 블룸도 느글느글한 악당 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합니다. 아마도 그의 캐릭터 범위를 확장시키는 분기점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달타냥의 숙적 로쉬포르 역의 매드 미켈슨은 캐릭터명의 발음 때문인지 자꾸만 카지노 로얄이 생각나더군요 (Rochefort / Le Chiffre) 카지노 로얄의 르 시프는 왼쪽눈에 흉터가 있고 이번 영화의 로쉬포르는 왼쪽눈에 안대를 차고 나온 걸 보면 의도적인 캐스팅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들고 (중간 보스란 역할도 비슷...) 말이지요.

틸 슈바이거가 초반에 어설픈 악당으로 잠깐 나옵니다. 이 배우가 이런 캐릭터 연기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처음이네요.

추기경 역의 크리스토프 월츠가 처음 나오는 장면을 보곤 당연히 제라르 드 빠르디유라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프랑스 배경에 갈라진 코 끝 때문이었겠지요.

프랑스 원작인 만큼 프랑스 왕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만 모든 캐릭터들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합니다. 헐리웃 상업 영화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여튼 덕분에 좀 웃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달타냥이 처음 총사들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아라미스가 그의 말에게 '딱지'를 뗀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자 달타냥이 한 마디 하죠.
'In French?' (쉬운 말로 해)

프랑스 꼬꼬마 왕과 버킹엄 간의 '패션 대결'도 재미있었어요. 나올때마다 바뀌는 꼬꼬마 왕의 옷 색깔에 사람들이 꽤 반응을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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