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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간기남 -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

간기남 -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

김형준


상관 부인과의 간통 스캔들과 업무상 과실로 2년의 정직을 당한 형사 강선우는 그 사이 자구책 삼아 흥신소를 운영합니다. 잡범 전과자 기풍과 함께 운영하는 흥신소의 주요 업무는 바로 '간통 현장 잡아내기' 배우자의 바람을 의심하는 의뢰인을 위해 간통 현장을 적발하고 위자료를 뜯어내게 하여 배당을 받는 식인 거죠. 사람 찾는 게 주업무인 형사 답게 그는 이 분야에서도 꽤나 실력을 발휘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카지노 사업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중년남자의 간통 현장을 잡기 위해 찾아든 모텔에서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 그는 살인 용의자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영화는 익숙한 재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뒷세계에서 범죄자랑 팀을 이루어 지저분한 일을 하며 돈벌이를 하는 박휘순의 형사 캐릭터는 추격자의 김윤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가 누명을 뒤집어 쓰는 장면은 스릴러에서 종종 사용되는 '잃어버린 기억'과 '침대 옆 시체'죠. 외에도 노골적으로 팜므파탈을 연기하는 박시연의 캐릭터라던가. 난 순전히 웃기기 위해 등장했다는 식의 '김정태,이한위' 콤비라던가.

이야기의 흐름도 익숙하고 뻔해요. 사실 너무 뻔하게 흘러서 마지막까지도 뭔가 비장의 반전 같은 게 준비되어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전에도 몇 번인가 말한 것처럼 뻔하다는 게 항상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쉽게 태만해지는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거죠.

'간기남'은 적어도 태만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꼼꼼하고 열심이며 나름의 재미로 무장했어요. 일단 가장 좋았던 건 적재적소에 배치된 코미디입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서 보면 종종 튀긴 하지만 여튼 몇 번인가 객석을 깔깔거리게 만드는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박시연의 팜므파탈 캐릭터와 간통이라는 소재답게 과감한 노출이죠. 박시연 파격노출 운운하는 언플에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수위가 꽤 높아요. 단순히 살색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묘사되는 성행위도 상당히 자극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에 점수를 주고 싶어요. 조연 캐릭터들이 나름 각자의 개성이 분명하고 개성에 맞는 역할을 충분히 해줍니다. 각본 자체가 조연 캐릭터들 각각에게 분명하게 자기만의 공간을 할애해주고 있어요. 이광수가 연기한 기풍, 주상욱의 한형사 그리고 김정태, 이한위 콤비까지 주연보다 기억에 남더군요. (지하철 추격씬에서의 주상욱 캐릭터의 연기와 김정태의 리액션은 정말.. 풉)

물론 단점도 보입니다. 일단 줄거리만 보고 추리나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갔다면 실망하실 겁니다. 결말은 뻔하게 흘러가고 게다가 주요 인물들의 행동 방식이 작위적이고 일관성이 부족해요. 특히나 박시연의 캐릭터는 초중반에 잠시 딴 세계라도 다녀왔거나 이블 트윈이 후반부에 바통터치라도 한 줄 알았어요. 물론 의도적인 거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보다 파격적으로 변신을 시키던가 적절한 설명이 따랐어야 합니다. 이야기 자체도 미스터리를 가지고 관객 희롱할 욕심이 없어요. 그냥 정공법으로 수르륵 지나가고 사건의 해결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냥 막판에 데우스 마키나 마냥 턱 증거물을 던져주면서 마감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결말이 얼른 보기에 아귀가 들어맞아 보여서 큰 거부감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종종 너무 작위적으로 흘러가는 부분이 미스테리 팬들에겐 거슬릴 수 있겠더군요. 예를 들어 강선우는 그냥 초반에 동료들을 통해서 경찰에 신고하는 게 맞았어요. 그런 불필요한 노력을 할 이유가 부족했죠.

영화적 재미에 있어선 웃음도 있고, 스릴도 있고, 액션도 있고, 노출도 있고... 여튼 충만합니다. 뻔한 이야기를 커버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는 게 곳곳에서 느껴져요. 구성적으로 완벽한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란 측면에선 갸우뚱하게 되는데요. 특히 간통이란 프리즘을 통해 비춰지는 강선우의 캐릭터는 모순적입니다. 일단 그가 정직을 먹게 된 과거의 스캔들을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부분에서 그는 결백한 희생자의 냄새가 풍깁니다. 이건 일종의 면죄부지요. 영화는 곳곳에 그를 위한 면죄부를 뿌려둡니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요? 그가 '삽입'을 하지 않았고 '사정'을 하지 않았다고 간통이 아니라는 논리가 비춰져서 불편하기만 한 걸요. 그의 부인이 막판에 그와 내연의 관계로 여겨지는 수진에게 '우리 남편이랑 잤니?'라고 물어보는 장면과 뒤이어 보이는 화해의 제스쳐는 그래서 불편합니다. 아직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몸을 섞었느냐 아니냐, 섞었다면 얼마나 갔냐의 문제보다는 마음을 얼마나 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이래도 XX는 안했으니까 결백하다는 거?)

간통죄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고 이게 폐지가 되었던 것도 같아서 검색해보니 폐지된 부분은 '혼인빙자간음'이고 간통죄는 아직 존치중이라는군요. 헌재에서도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태인 모양입니다. 사실 간통죄라는 게 웃긴 얘기죠. 어찌 보면 이중으로 벌을 주는 것이기도 하고 개인의 성적결정권을 국가권력이 침해하는 꼴이기도 하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럼 영화가 필요 이상으로 논쟁적이 되었을까요? 지금도 충분히 논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네이버 간통죄 항목입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3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