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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플립(Flipped) - 로브 라이너

[영화] 플립(Flipped)


로브 라이너



꼬꼬마 브라이스는 건너집에 이사온 소녀 줄리를 보는 순간 꼬였다 싶은 직감을 하게 됩니다. 이 소녀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불편한 거죠. 그 나이 아이들이 종종 그렇듯 여자애랑 어울리는 행위가 낯설고 그래서 싫은 겁니다. 반면 브라이스의 눈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줄리의 일방적인 대시는 몇 년간 이어집니다. 그렇게 서로 마주하는 이웃 사이의 두 소년 소녀의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스토리 텔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의 원제 Flipped는 뒤집히다, 젖히다의 뜻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이 단어는 중의적으로 사용되는데요. 일단은 영화 자체의 형식입니다. 영화는 브라이스와 줄리 둘의 시선을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시켜요. 종종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의 시선에서 다르게 해석되거나 곡해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동전의 양면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사건은 찌질한 꼬꼬마의 바보짓이 되기도 하고 순수한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이야기 속 주인공 소년소녀의 관계죠. 처음엔 줄리의 일방적 짝사랑으로 시작된 둘의 관계는 서로 성장해가면서 겪게되는 몇몇 해프닝으로 꼬여버리고 줄리가 브라이스에게 실망하고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미움으로 변해버리는 순간 묘하게도 사춘기에 접어들어 철이 든 브라이스 녀석은 줄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멋진 여자인지 깨닫게 되거든요. 사랑이란 감정에서 둘의 입장이, 그러니까 갑과 을이 바뀌는(뒤집혀버리는) 순간이 찾아오는 겁니다.




2차대전 이후 베트남전 무렵까지 한창 풍요를 누리는 낭만의 6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외국인의 시선에서 봐도 낭만적이고 노스텔지어가 느껴지는 사건과 영상들이 펼쳐집니다. 소년소녀가 등장하고 그네들의 사춘기 무렵 풋사랑의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자극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고민할 만한 사건, 관계들과 함께 펼쳐보인다는 점에서 '원더 이어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로브 라이너 감독이 연출한 영화답게 이야기가 맛깔나면서도 참 착해요. 보고있으면 절로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자극적 영상이나 섹스 이야기들로 그득한 요즘의 청춘 연애물들도 나름 재미는 있지만 역시 이런 이야기로 한번은 심장을 정화해줘야 하는 때가 누구나 있기 마련이지요. 일본애들 표현을 빌자면 '치유계' 영화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론 생각날때마다 한 번씩 꺼내보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줄리 역의 매들린 캐롤은 적말 적역입니다. 묘한 매력이 있는 아가씨인데 때에 따라서 수더분해보이기도 하고 완전 매력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연기도 좋지만 극중 줄리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라 득을 좀 보았을 것 같아요. 완전 밥맛 덩어리인 브라이스 역의 캘런 맥오리피에 비한다면 말이죠.




꼬맹이 시절 줄리를 연기한 아역배우는 좀 지나치게 귀여워요. 브라이스 놈의 행동에 설득력이 떨어지죠. 반면에 꼬맹이 브라이스는 완전 샌님처럼 생겨서 역시나 줄리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고. 완벽한 미스 캐스팅이랄까.

(꼬꼬마 브라이스와 줄리)

레베카 드 모네이나 에이단 퀸 같은 배우들이 주인공 엄마아빠로 조역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월 참 많이 흘렀구나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