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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로스트 (gone)

로스트



김윤진 나오는 미드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제는 GONE인데 극중 인물의 실종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데서 나온 제목이니 로스트란 제목도 틀린 건 아닙니다.


동생과 둘이 사는 질은 늘상 악몽과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1년 전 불명의 남자에게 납치되어 깊은 구덩이에 감금된채 살해될 위기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경찰은 그녀의 납치감금 건을 그닥 신뢰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녀의 몸에 범임의 흔적이 없고 그녀가 갇혀 있었다는 숲 속 구덩이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결국 질은 혼자 쇼하는 미친X 취급 받고 감호치료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범인이 살아있고 자신을 또 노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질은 동생 몰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가출로만 여기고 그녀의 말을 믿지 않죠. 이제 질은 혼자서 동생을 찾아야 하며 이는 곧바로 과거의 범인과 대면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정말 몰리는 납치된 걸까요? 정말 범인은 있는 걸까요?


영화의 구조는 흥미를 유발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일단 주인공 질은 신경증에 시달리며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납치범을 찾아 나서는 추격자이면서 동시에 그런 그녀의 폭주를 막으려는 경찰의 손길을 피해야 하는 도망자이기도 하지요. 영화는 과거 질의 납치 사건의 기억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그녀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던집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다 보고나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북미에서의 시원찮은 흥행 (2천2백만 달러 예산의 영화는 북미서 절반도 채 회수를 못한 모양이더군요)이 이해가 가는데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너무나 형식화된 캐릭터들과 힘 빠지는 클라이맥스. 영화엔 질 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질의 동료, 친구, 경찰들 그리고 그녀가 개인적으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정보제공자와 용의자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편의적으로 존재합니다. 소년 탐정단 마냥 매번 그럴듯한 거짓말을 둘러대며 정보를 캐내는 질의 재기는 흥미롭지만 그녀의 거짓말에 곧바로 '응 그랬어?'라는 반응으로 술술 이야기를 털어놓는 인물들을 보면 게임 속 NPC라도 되는 것 같아 보여요. 게다가 몇몇 캐릭터는 심하게 낭비되어 원래 각본이 이랬을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가장 심한 건 웨스 벤틀리가 연기한 후드 형사겠지요. 그보다 큰 구멍은 역시 범인의 실체와 연결되는 클라이맥스일 겁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몰리의 실종 진상과 질의 납치 사건의 사실 유무는 영화를 꽤뚫는 미스터리입니다. 하지만 추격자/도망자로서 활약하는 질의 모습을 보여주며 나름 긴장의 템포를 이어가던 영화는 정작 그 진상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김빠지는 방식으로 마무리하더라는 거죠. 사람 진 빠질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도 싫긴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는 오르가즘 없는 섹스이며 동시에 조루입니다.


결말의 아쉬움을 접는다면 나름 매력적인 요소들도 많은 영화인데요. 사건의 진상은 잘만 직조되었다면 관객의 뒤통수를 때릴 만한 요소가 있지요. 특히 몰리가 발견되는 부분 같은 거 말이죠. 그리고 앞서 언급했다시피 질이라는 캐릭터가 수사를 해나가는 과정도 재미있어요. 일단 아만다 사이프리드란 배우의 매력 덕에 화면이야 아름답고요. 정신병적 불안과 평균을 뛰어넘는 영민함을 동시에 가진 질의 극중캐릭터도 흥미롭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그녀가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거짓말들이나, 중요 순간에 빠르게 상황판단을 하고 추리를 도출하는 모습들은 명탐정 소설이라도 읽는 기분이 들더군요.


맘마미아의 성공 이후 스타덤에 오른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연달아 찍은 영화들이 모두 고만고만한 가운데 이 영화는 성적만 놓고 보면 실패작이라 할 수 있겠지만 뜯어보면 꽤나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