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reading 100 books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 넬레 노어하우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넬레 노어하우스

(2011, 19)

결혼 후 남편 사업을 도우며 간간히 집필해 자비출판하던 주부 작가를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린 작품으로 <미움 받는 여자><너무 친한 친구들><깊은 상처>에 이은 타우누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입니다.

11년전 조용한 시골마을인 알텐하인에서 두 명의 여학생이 실종됩니다. 결국 소녀들은 발견되지 않지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증거는 그녀들과 삼각관계에 있던 학생 토비아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증거들에 의존해 살인혐의에 유죄판결을 받은 토비아스는 감옥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형기를 마친 토비아스가 아버지가 살고 있는 마을로 다시 돌아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의 귀향을 바라보며 개중 몇몇은 직접적으로 린치를 가하기도 하는 사이 실종된 여성 중 한명이자 '백설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던 스테파니와 같은 외모에 그 때와 같은 18세인 소녀 아멜리는 토비아스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옵니다. 그리고 마치 11년 전의 악몽을 재현하듯 아멜리가 다시 실종되고 마을은 다시 불길한 기운에 휩싸입니다. 이제 시리즈의 명콤비인 타우누스아 피아 형사는 조용한 마을에 감춰진 과거 실종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평범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알고보면 끔찍하고 무서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더라는 설정은 뻔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유통기한이 넉넉히 남은 소재입니다. 설정 자체로 인간의 양면성을 손쉽게 드러낼 수 있으니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책은 과거의 사건에 허점들을 여럿 만들어두면서 여러명의 용의자를 선보이고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하나씩 쳐나가는 방식으로 진범을 찾아갑니다. 사실 구성상 특징 덕분에 소설에서 '진범'을 가리긴 애매합니다. 그보단 '진범들'을 하나씩 캐내가는 과정이고 토비아스의 무죄를 입증하는 과정이지요. 꽤나 매력적인 장치들이 몇몇 등장하고 주어를 생략한 서술을 삽입하여 독자로 하여금 범인을 추리하게 하는 재미도 있지만 사실 맘먹고 따지고 들자면 허술한 부분이 많은 책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위성입니다. 복잡하게 꼬인 인물관계와 사건의 진상 때문인지 곳곳에 편의적 장치들이 작위적으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용의자 절반이 건물 몇 채는 소유한 부자들이라던가 억울한 주인공 토비아스가 술만 마셨다 하면 결정적 순간마다 필름이 끊기다던가 (내심 어떤 약물에 의한 조작이길 바랬는데 끝내 그런 설명은 없더군요) 너무나 당당히 등장하는 비밀 지하실이라던가 자폐증 환자가 가장 중요한 목격자라던가 하는 부분들 말이지요. 특히나 11년전 사건에서 시신이 직접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간접적인 증거만으로 토비아스가 실형을 (형량으로 보아 분명 살인 혐의에 대한) 받은 부분은 저쪽 법 체계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설득력이 떨어져 처음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아마도 실재 비슷한 케이스가 독일 현지에서 있었던 건 아닐가 싶은데 말이지요, 이 점은 번역하는 측에서 그런 부분까지 살짝 사전정보로 삽입해 줬으면 좋지 않았을가 싶더군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한국판을 들고있는 작가분 - 출처 동아일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꽤나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히는 유려한 전개와 개성있는 캐릭터들 덕분일 겁니다. 핵심이 되는 소녀 실종사건 외에도 경찰 소속 캐릭터들의 사생활도 꽤나 비중있게 다루어지는데 그 나름의 재미들이 있습니다.  타우누스는 25년간 함께한 부인 코지마의 외도를 알게 되고 갈등하는 위기의 중년이며 여형사 피아는 새로운 연인과 함께 살기 위해 구입한 집이 법적인 문제로 헐리게 생겼고 그외 수사팀 소속 인물들은 이런저런 일들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중심 미스테리와 토비아스의 고난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순간마다 적당히 삽입되어 양념역할을 하며 주위를 환기시키고 동시에 인물들의 성격을 설명하거나 형성하기도 합니다.

결말은 어정쩡한 해피엔딩입니다. 토비아스는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지만 아버지를 잃게되지요 범죄와 관계된 인물들이 워낙 많다보니 독자 입장에서 감정을 쏟아부을 순간이 분산된 느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해결은 됐는데 껄쩍지근한 맛이 남는 거죠.

독일의 현대 미스테리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해본 것 같은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보단 정서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미국 소설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세계적 정서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말미에 붙은 역자후기에 따르면 소설의 배경인 알텐하인 마을은 독일에 실존하는 곳이며 작가가 사는 곳이라고 하네요. 자기 사는 마을을 배경으로 이런 흉악한 범죄극을 쓴 작가도 그렇지만 그걸 또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니 흥미롭습니다.

'2011. reading 100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적 - 엘모어 레너드  (0) 2011.05.17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 (상)  (0) 2011.05.10
송가네 공부법 - 송하성  (0) 2011.04.28
불편한 진실 - 엘 고어  (0) 2011.04.28
UBIK - 필릭.K.딕  (0) 2011.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