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ncy's critic

[영화] 두개의 달 - 김동빈

두개의 달


김동빈


외딴 숲 속 덩그라니 서있는 집 한채 요양시설로 사용되었고 살인사건이 벌어진 후 버려진 상태라던 흉가의 창고에서 깨어난 세 명의 남녀는 어쩐 일인지 자신들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치 미로마냥 그들을 잡아두는 숲속의 집에서 자꾸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 불길한 기운 그리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기이한 현상과 두개의 달. 대체 이 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의 설정은 '정체불명의 공간에 갇힌 사람'과 '잃어버린 기억'의 조합입니다. 이 조합 자체가 익숙하죠. 호러/스릴러 쟝르에서 종종 애용되는 트릭들입니다. 영화는 기존의 공식들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면서 약간씩 비틀어 갑니다. 지하 창고에서 깨어난 인물들이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허우적거리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남자 주인공이 창고 문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기본 공식대로라면 잠겨 있어야 할 문이지만 정작 허무하게 열려버리는 식이지요. 사실 눈썰미 좋은 관객은 중반 즈음 되면 이들이 처한 상황이 대강 어떤 건지 짐작하게 됩니다. 후보군이 많지도 않거니와 친절하게 단서들을 흘려주거든요. 맥이 빠질수도 있겠지만 기실 영화가 관객을 죄는 건 이 순간부터입니다.


뻔하게 드러난 공식대로의 진상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건의 정체를 어떤 식으로 소개하고 해결할지에 대한 것이 영화의 진짜 노림수입니다. 백날 한국적 공포, 한국식 호러 떠들어대던 미국/일본 짝퉁 영화와 달리 두개의 달은 헐리웃에서 익숙했던 공식들을 가져와 우리식으로 풀어냅니다. 보통 이런 영화가 잘못 만들면 후반가서 지치거나 지루해지는 데 반해 영화는 중후반에 더더욱 긴장의 끈을 잡아죕니다.


후반부의 전개는 자칫 유치해 질 수 있는 부분을 적절한 수위에서 조절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거 은근히 어려운 일이지요 어설프게 이 영화 따라하다가 재연극 찍을 가능성 높아요. 전반부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복선과 캐릭터, 극의 분위기 덕분에 가능한 거죠. 반증으로 후반부 특정 장면만 따로 떼어놓고 사전정보 없는 사람에게 보여줬다면 헛웃음이 나오거나 전혀 다른 쟝르의 영화로 오해할 지도 몰라요.


얼마 전 보았던 캐빈 인 더 우즈가 생각나네요 기존의 공식을 그대로 가져와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창작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적 가능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영리한 영화고 알뜰한 영화에요.


이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 나오는 박한별은 함은정과 비슷해 보여요. 데뷔때만 해도 포스트 전지현 운운하던 기억이 있는데.


설정과 복선들 때문에 전반부에 종종 편집이 튀어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끝까지 보면 의도적이었다는게 이해가 가겠지만 인내심 없는 관객에겐 여기서 점수 깎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말하자면 재관람하며 숨은 복선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