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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연가시 - 짜증 만땅...

연가시


박정우


한국형 질병재난영화를 표방한 연가시는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기생충 연가시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원래 연가시는 육식성 곤충의 몸에 기생하며 성장하다 산란기가 되면 숙주의 몸을 조종해 물 속에 뛰어들게 한 뒤 밖으로 나와 다시 물에 알을 까는 독특한 번식방법을 가지고 있는 기생충입니다. 여기서 숙주가 곤충이 아닌 인간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영화는 출발해요. 사실 이건 누구나 쉽게 생각해낼 아이디어입니다. 연가시의 존재가 화제가 되었을 때 댓글들이나 블로그 글을 검색하면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언급한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건 화제성 면에서 득이지만 반면 일반인들이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되기도 하지요.


일단 영화는 인간을 숙주로 삼는 변종 연가시를 타깃으로 삼고 질병재난이란 역시나 익숙하고 검증된 서스펜스 구조를 가져와요.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의문사가 발생하고 전문가 집단이 그 원인을 찾아가보니 변종 연가시가 드러나고 다시 그 뒤에 거대한 힘이 작용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이지요. 그리고 어인 일인지 CJ발 재난영화가 늘 그러하듯 중심에는 찌질하기 짝이 없는 전형적 한국마초 아저씨가 등장해서 가족 운운 하며 감동코드를 날립니다. (그리 잘 먹히진 않지만) 하지만 질병재난영화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역학조사, 치료제 개발 같은 소재를 주인공에게 밀착시키고 싶었는지 무지렁이거나 육체노동자였던 이전의 재난물과 달리 무려 '박사'출신 주인공을 집어넣고 그의 동생은 형사, 후배이자 동생 약혼녀는 질병관리본부에 사복으로 드나드는 전문가 집단으로 상정해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주인공 가족은 감염자가 됩니다.


너무나 편리하게 잡은 설정이지만 여기에 대해서 크게 불평하고 싶진 않아요. 헐리웃발 영화, 미드 등을 통해서 이 쟝르 공식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버린 관객들에게 뻔한 과정을 루즈하게 들이밀기 보다는 설명 생략하고 빠르고 화끈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패기 같은 것도 느껴지고요. 현미경 들이 밀어야 보일까 말까한 바이러스나 변형단백질들과 달리 손에 잡힐듯한 기생충 연가시를 소재로 잡음으로서 손 쉽게 시각화하는 방식도 괜찮습니다. 이야기 템포는 빠르고 위협의 정체는 구체화되어 우리 눈에 보여지죠. 단순한 공충들과 달리 복잡하고 논리적인 인간의 뇌를 손쉽게 조종하는 기생충이란 설정이 미덥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충분히 설득이 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뒤에 숨은 음모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쓸데없을 만큼 위험하지만 추리적 요소를 넣음으로서 인물들에게 할 일을 부여하고 갈등을 다층적으로 만든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상의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나면 짜증이 밀려옵니다. 하는 일도 없이, 때로는 불필요한 삽질을 해대며 소리만 버럭버럭 질러대는 영화 속 인물들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관객들이 느끼는 거북함과 짜증의 끝엔 각본가와 제작진이 있습니다. 꽤나 괜찮은 소재, 갈등 구조, 인물 들을 잘 잡아놓고도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동안의 노고를 허사로 돌리듯 손을 놓아버려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극중 인물들은 답답하고 짜증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거지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렵사리 치료제를 구한 주인공이 가족에게로 가려는 순간 어린 아이를 부여잡고 우는 여자를 발견해요. 그에겐 4알의 치료제가 있지만 가족은 3명, 순간적으로 갈등하던 그는 여분인 1알의 치료제를 여인에게 건네지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군중들은 이성을 상실한 채 그에게 약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어요. 그 상황에서 과연 발길을 돌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넘어가더라도 (그때까지 보여진 주인공의 모습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었으니까요) 조금만 통박을 굴리면 그런 상황을 모면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세알을 까서 주머니에 넣고 한 알만 남긴 포장을 던져준다던가 (사람들이 달려오면 빈 껍데기를 들어보이며 다 쓰고 한 알 남았다고 하면 될 일이죠) 아니면 아예 차에 탄 채로 던져주고 가는 방법도 있죠. 그냥 말없이 툭 던지고 갈 수도 있을 겁니다. (알약의 모양이나 색은 이미 뉴스를 통해 공개되어있었으니까요)


더 한심한 상황은 이후 음모를 꾸민 작자들이 폐공장에 숨겨놓은 10만상자의 치료제를 찾으러 갔을 때 드러나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약들이 소용없어지는 결과에 이르기 전까지 주인공이 약을 얻을 기회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주인공이 결과적으로 약을 얻지 못하고 악당들 때문에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가족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보니 억지 설정들이 남발을 합니다. 형사 동생은 왜 멀뚱히 공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주인공은 불이 붙기 전이나 아니면 후에라도 잽싸게 약 한통 정도 빼내지 못했을 까요? 물론 상황 설명과 함께 이러저러한 핑계를 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핑계가 통하려면 적어도 그에 걸맞는 연출이 있었어야 했어요. 화면 속에선 빤히 약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물들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도 되는 듯 멍청하게 행동하니 갑갑해 미칠 지경이지요. (짜증을 유발해 관객들을 조바심나게 할 생각이었다면 훌륭하게 성공했다 말하겠지만...)


연가시는 먹힐만한 소재, 괜찮은 배우, 그럴듯한 화면과 가능성을 가진 서사구조를 가지고도 결과적으로 짜증만 유발하다 얼렁뚱땅 끝나버린 영화입니다. 인프라는 굉장히 좋은데 콘텐츠가 부족하달까. 열심히 준비해놓고 막판에 흐지부지 했다고 할까. 여튼 이래저래 아쉬움이 너무나 많이 남아요. 어쩔 수 없이 해운대와 비교하게 되는데 정말 구멍투성이다 못해 영화 전체가 거대한 구멍이었던 해운대에 비한다면 연가시는 나름 아구가 들어맞는 스토리와 그래도 납득할 만한 인물,갈등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정도 예산' '이정도 스탭/배우'를 가지고 만들면서 이야기를 이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하나...하는 아쉬움의 한탄이 곳곳에 터져나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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