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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 신화의 완결

다크나이트 라이즈


크리스토퍼 놀란



2009년 다크나이트를 처음 관람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질 못합니다. 쥬라기 공원이나 매트릭스처럼 엄청 새로운 무언가를 똭 선보인 건 아니지만 기존의 것들을 가장 창조적인 방식으로 조합한 뒤 장인의 손길로 벼려낸 이른 바 '마스터피스'였죠. 충격적인 건 그게 '배트맨'이란 캐릭터를 통해, 그것도 '속편'에서 드러났다는 것이고...(뭐 개인적 감상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다크나이트의 충격은 오래전 스타워즈 에피4를 개봉관에서 본 미국 아이들의 충격과 비슷한 거였습니다. 소재나 이야기나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나 일찍이 어디서 한 번은 본 것인데 이걸 적당히 짬뽕해서 '이 이상 짬뽕질하면 시망'이라는 아슬아슬한 지점의 극한까지 퀄리티를 끌어올린 것이었죠. 코믹스히어로, 느와르, 하이스트, 액션, 로맨스, 신화 등등이 이리저리 얼버무려져 있는데 어느 것이든 집어 기준을 삼아도 평균 이상, 또는 극강의 것을 보여주더란 겁니다. 당연히 세계가 열광했고 저 역시 네 번이나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솔솔 (그리고 당연하게도) 속편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그 사이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셉션'이란 걸출한 작품으로 또 한번 제 머리를 뒤 흔들어 놓았지요. 그런데 이쯤 되니 기다리는 입장에서 불안해집니다. 사람의 재능이란게 마르지 않는 샘도 아니고 언젠가는 동이 나는 때가 오기도 하거니와 전작 다크나이트의 아우라가 너무나 거대해서 아무리 잘 만든다 한들 속편은 그 그림자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는 거지요. (별개로 출연진들의 심심하면 한 번씩 터뜨려주는 막장 스캔들도 있었고...음 이건 뻘소리인가?) 그렇게 긴 기다림을 거쳐 속편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완성되었단 얘기가 나오고 개봉일이 잡히고 드디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가 있었던 날 인터넷은 다시 한 번 달아올랐습니다. '시리즈의 진정한 완결' '다크나이트에 버금 또는 그 이상' '마스터피스!' 등의 찬사가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쏟아지니 나 스스로가 괜히 불안할 정도로 기대치는 올라가버렸어요. 이거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개봉일 대구 CGV 아이맥스관에서 잽싸게 오픈한 티켓을 들고 관람을 마친 무렵 저는 살짝 짜증이 났습니다. 대체 놀란 형제에게 신은 왜 이런 재능을 몰빵해줬나 하는 불만이었죠. 그렇습니다. 시사회의 찬사는 결코 인사치레나 허풍이 아니었어요. 놀란 감독은 직접 감독한 전편들의 이야기를 아우르며 배트맨 3부작을 완성시키는 '완결'편을 역시나 엄청난 퀄리티로 만들어냈습니다. 불안은 있을 지언정 실망은 없었다라고 할까요.


이번 3부 '라이즈'의 핵심은 시리즈의 완결입니다. 이야기의 톤이나 분위기 등이 살짝 어긋나 보였던 두 개의 전작으로 통째로 아우르며 3부에 걸쳐 해왔던 부루스 웨인/배트맨에 대한 이야기에 하나의 방점을 찍는 순간이었어요. 일반 영화팬도 열광할 만한 서스펜스와 반전을 두루 갖춘 이야기에 코믹스 팬들을 위한 낚시질과 서비스 컷도 충실한 풀패키지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아우르는 두개의 주제는 '죽음'과 '부활(RISE)'입니다. 영화 전체에 걸쳐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rise란 단어는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며 긴장을 끌어올리는 도구이고 이야기를 마감하기 위한 결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베인과 배트맨 두 캐릭터의 대결 구도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죽음'이지요. 자연스럽게 두개의 주제는 연결되기도 합니다. 전편 다크나이트의 마지막에서 백기사 하비덴트와 고담을 위해 모든 오명을 뒤집어 쓴 배트맨은 이후 잠적하여 활동을 중단합니다. 그의 의도대로 하비 덴트는 '빛(明)'이 되어 도시의 조직범죄를 일소하고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지만 배트맨/부르스 웨인의 인생은 점점 더 '암흑(暗)'으로 숨어들지요. 플레이보이 백만장자였던 부르스 웨인은 이제 저택에 쳐박혀 두문불출하는 기인이 되어 이상한 소문 속에 숨어버립니다. 게다가 배트맨 활동을 하며 입었던 부상은 물리적으로도 그의 몸을 망쳐놓고 있지요. 전편에서 8년이 지난 지금 웨인은 배트맨 이기보다는 장애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대사처럼 불길한 기운이 고담시에 내려앉고 평화의 시대는 그 끝을 맞이합니다. 거기엔 말 그대로 '지하'에서 서서히 몸을 불리며 세상으로의 기상(RISE)을 기다리던 악당 '베인'이 있습니다.


새로운 빌런인 베인은 필연적으로 전작의 조커와 비교할 수 밖에 없는데요. 전작과 똑같이 라이즈의 시작은 아이맥스 비율로 촬영된 거대한 하이스트 액션을 통해 악당의 캐릭터를 설명합니다. 조커가 자기 편들까지 속이며 카오스란 표현이 어울릴 목적을 가늠치 못할 행동을 보이는 미치광이 책사였다면 베인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카리스마와 공포로 자신의 부하들을 '영혼'까지 장악해버리는 공포의 교주입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조커의 공포였다면 베인은 너무나도 명확한 공포 그 자체이지요. 배트맨에 대한 목적의식도 조커가 '와이 소 시리어스~'라며 배트맨과 놀자고 달려드는 스토커 연인 같다면 베인은 '부숴버릴거야'라며 달려드는 복수의 화신이지요.


악당의 면모 만큼이나 이야기의 흐름도 다릅니다. 조커가 배트맨을 위기 직전까지 몰아넣어 결과적으로 배트맨이란 상징성을 죽여버렸다면 베인은 보다 근원적인 부르스 웨인, 그리고 그의 삶이자 목표였고 부모님의 유산이던 고담시 자체를 날려버리려 듭니다. 조커가 배트맨의 호적수였다면 베인은 아예 배트맨을 묵사발을 내버리는 포식자지요. 


그렇게 배트맨과 웨인 두 개의 아이덴티티를 '바닥'까지 끌어내려 버린 중반이 지나면 영화는 거대한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담을 배경으로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을 망가뜨려 버립니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배트맨, 다크나이트는 어두운 지하에서 다시 일어섭니다 (RISE!) 그리고 모든 것을 건 베인과의 대결을 통해 시리즈의 끝을 향해 내달리지요. 거기엔 미처 예상치 못한 반전들과 팬들을 위한 서비스, 그리고 시리즈의 완결이자 웨인이란 인물이 가진 삶의 여정의 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훌륭한 영화이자 이야기이지만 역시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두 편의 전작을 미리 복습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편, 특히나 1편인 배트맨 비긴스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복선으로 만들어버린 이 거대한 우화는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평가하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물론 단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가장 큰 단점이라면 '짧은' 상영시간이겠지요. 2시간을 넘어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 짧다니 뭔 소리냐? 싶겠지만 역시나 짧아요. 그러니까 모든 이야기를 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란 거죠. 그러다보니 정신없이 이야기들이 흘러 갑니다. 물론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고 적절히 안배하여 쥐었다 폈다 리듬을 유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3시간 짜리 영화가 '다이제스트' 같은 느낌이 들 지경이라면 얼마나 압축되었는지 알만하죠. 여기서도 놀란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데 압축은 되었을 지언정 '축약'이 되었단 느낌은 없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집니다. 욕심 같아선 배트맨이 '추락'하는 중반부에서 딱 끊어버리고 2시간 반짜리 영화 두 편으로 나누어 제작하는 게 더 좋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다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뭔가 후딱후딱 넘어가버리는 느낌도 있습니다. 


(스포일러 경고)


이제 대량 스포일러로 가득한 까발리기를 해봅시다.


1. 라스 알굴과 스캐어 크로가 나오나요?

예 나옵니다. 킬리언 머피의 스캐어크로는 다크나이트때처럼 귀여운 찬조출연이라면 리암 니슨의 라스 알굴은 꽤나 비중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1편에서 그는 죽지 않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요, 1편에서 라스 알굴은 죽은 게 확실합니다. 다만 이번 편에서 포스의 영.....이 아니고 부르스 웨인이 보는 환영으로 등장하여 중요한 단서를 던지는 거죠.


2. 베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라스 알굴이 나오고, 배트맨을 압도하는 베인이란 악당이 나오니 당연히 둘은 연결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트릭이 있어요. 영화는 마지막까지 베인에 대한 단서들을 던져주며 그가 라스 알굴/듀커드의 숨겨둔 자식이자 후계자인 듯 보여주지만 진상은 따로 있지요.


3. 미란다 테이트의 역할은?

2번 질문에 이어집니다. 그녀가 죽은 레이첼의 빈 자리를 채워주고 웨인 기업을 살리는 부르스 웨인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걸까요? 그런것처럼 보여주던 영화는 막판에 그녀의 정체를 드러내며 반전을 선보입니다. 네, 그녀의 정체는 탈리아 알굴입니다.


4. 캣우먼은 배트맨이랑 얼레리 꼴레리 하는가?

얼래리 꼴래리 하는 건 미란다 테이트고요. 그래도 막판엔 캣우먼/셀리나 카일하고 부르스하고 짝짜꿍 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전 작품에서와 같은 도시전설이나 화학약품 노출 같은 신비한 배경은 없어요. 그녀는 고전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쥬얼에 여자버젼 루팡 같은 캐릭터이지만 배트맨보다도 현실에 붙어있습니다. 심지어 '캣우먼'이란 단어도 명시적으로 나오진 않아요.


5. 존 블레이크의 정체는 뭔가?


조토끼 군이 연기한 존 블레이크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가설들이 나왔고 개중엔 모 완구회사의 보도자료에 기초하여 존 블레이크=아즈라엘 설이라던가 제2대 배트맨 설 같은 게 있었지만 결론은 보다 안전하고 당연한 쪽으로 나게 됩니다. 그의 풀네임엔 '로빈'이 들어갑니다.


6. 고든이 죽는가?

첫번째 티저 예고영상에서 병상에 힘겹게 누워있는 모습이 보이면서 고든 사망설이 솔솔 돌기도 했지만 그는 굳건히 살아남아 엔딩을 장식합니다. 다만 그의 아들딸은 나오지 않아요. 당연히 배트걸 같은 것도 없습니다.


7. 배트맨/부르스 웨인이 죽는가?

예, 그리고 아니오. 영화는 '죽음'이란 주제를 끌어가며 웨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가 핵폭탄을 매달고 더 배트(라고 쓰고 배트윙이라 읽는)를 탄 채 대양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가 죽음의 희생을 통해 고담시를 살려내는 결말을 보여주죠. 하지만 지하감옥에서 그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의 공포를 직면하고 인정하여 체화했기 때문이지요. 당연하게도 웨인은 마지막 순간 탈출해서 살아남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배트맨과 함께 죽은 인물이 됨으로서 세상 밖으로 나와 새 삶을 시작하게 되지요. 고담은 누가 책임지냐고요? 5번을 참조하면 됩니다.


7번 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는 '죽음'이란 주제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관객에게 거대한 떡밥을 던집니다. 베인의 정체 만큼이나 이 떡밥을 이용한 감독의 트릭은 제대로 먹혀들지요. 영화의 엔딩을 보고 있노라면 놀란 감독에게 인셉션 당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이런 캣우먼은 등장하지 않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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