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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퍼스트 어벤저 - 조 존스턴


 


퍼스트 어벤저

조 존스턴


국내에선 '퍼스트 어벤저'란 부제가 본제로 나붙긴 했지만 정확히는 캡틴 아메리카란 마블의 장수 히어로의 영화입니다. 수입사에서 왜 굳이 부제를 앞으로 끌어냈는지 절로 이해가 가는 명칭만큼이나 캡틴 아메리카는 투박하고 촌스런 영웅입니다. 영화는 이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리지널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2차대전을 배경으로 거의 그대로 옮겨오며 정공법으로 펼쳐나가지요. 캡틴 아메리카인 스티브 로저스는 전장에서 전사한 아버지, 그리고 2차대전이란 불안한 세계 정세속에서 '놈팽이들이 싫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 일조하고 싶어하는 청년입니다. 그 무렵 끓는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무작정 전쟁터로 자원해 나간 미국 청년과 다를바 없지요 다만 신병훈련 자체가 건강에 위해가 되지 않을까 싶은 약골이란 점이 문제입니다. 이 무렵을 다룬 전쟁영화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나이 속이고 군에 들어온 꼬맹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지요. 아마도 히어로물이 아닌 정극이었다면 혈기에 뛰어들었다가 전쟁의 속내를 몸으로 겪어내고 혼란스러워하다 인간적으로 성숙해나가는 (또는 아예 망가져버리는) 스토리가 펼쳐질만한 설정입니다만... 뭐 신들이 남겨둔 유물이 나오고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오버테크놀러지가 나오는 영화이기에 그런 식으로 진행되진 않습니다.

 

 

 

(슈퍼히어로 만들기, 렌지에 넣고 30초만 돌려주시면....)

순수하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순진하다는 소리고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물정모르는 단순무식이란 말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그런 인물입니다. 굿한 놈이 그레이터 해진다 운운하는 박사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전쟁터에서 영웅노릇하기 위한 인물이지요. 이분법에 의해 적과 아군이 구분되면 별다른 고민없이 적을 싹쓸이 해버리지요. 우리편은 또 얼마나 챙기는척 하는지요. 뭐 그러다가도 친한 친구가 자신을 돕다가 죽으면 슬쩍 고민하는 척 하다 금새 '복수의 칼'을 갈기도 하고...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단순하기만 하던 영화 속 캡틴 아메리카도 상당히 복층적이고 이중적인 캐릭터가 됩니다. 그는 평화의 상징이며 선의 상징이며 인류적 정의입니다. 그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총,칼이 아닌 '방패'라는 점만 봐도 의도가 노골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전쟁은 우리가 아니라 저쪽 넘들이 벌린 것이고 우리편은 세계 평화와 정의 그리고 인류의 수호를 위해 '방어전쟁'에 나선 것 뿐이라는 거죠. 그래서인지 그의 전투 방식은 둔탁한 맨몸액션과 스턴트가 상당수고 그의 손에 죽어나가는 적들의 최후는 덤덤하게 묘사되거나 생략되거나 아니면 가면을 뒤집어 씌어 물화시킵니다. 주적인 레드스컬의 최후를 보세요. 동시에 그를 돕는 동료들은 미군에 한정하지 않고 우방의 각국 대표격인 용병들로 구성됩니다. 캡틴 아메리카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독일인이고 동료들은 유럽각국도 모자라 미국출신이긴 하지만 동양인도 끼워주는 식이죠.



이쯤 되면 캡틴 아메리카에 관한 정보를 주워들으며 의아했던 부분이 풀립니다. 얼마 전 본 '슈퍼'란 영화에서 주인공이 코믹스 서점 점원인 엘렌 페이지에게 '초능력 없는 영웅'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배트맨, 아이언맨 등을 언급하다가 캡틴 아메리카를 찍어줍니다. 그러곤 곧바로 다시 말을 뒤집지요. 아차아 그는 능력이 있어요. 일반인보다 능력이 뛰어난 '슈퍼 솔쳐'에요 라면서 말이지요. 마블세계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며 스타크와 함께 양대산맥격인 그에게 주어진 능력이 여타 히어로들에 비하면 보잘것 없단 것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죠. 대체 이렇게 약해빠질것 같은 녀석이 리더역할을 하는 이유가 뭐야? 심지어 어벤져 중엔 '신'까지 있잖아? 라는 궁금증이 절로 생깁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야기에서 답이 나옵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미국의 상징이란 거지요. 그러니까 캡틴 아메리카는 그냥 '유나이티드 아메리카'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 같습니다.


허접한 인물분석은 이쯤하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전 자주 귀를 기울입니다. 가장 직접적이고 싱싱한 반응들이니까요. 제 뒷자리에 앉은 경상도 싸나이가 한 말이 인상에 남더군요.

'이거 뭐가 이리 약하노. 완전 유치하네...'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순진하고 촌스런 영웅입니다. 자아 내면까지 파고들며 존재론적 고민에 빠져들며 쌔끈한 유니폼을 입고다니는 요즘 영웅들하곤 태생적으로 달라요. 굳이 따지자면 그는 DC의 슈퍼맨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싸나이 관객의 '약하다'란 표현은 캡틴 아메리카의 능력치에 관한 것 보다는 영화 전체의 힘에 관한 얘기일 겁니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오버테크놀러지 무기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에 비해 이 영화의 액션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드라마를 위해 소모되는 경우가 많고 것도 아니면 3D효과적 재미를 선사하는 단편적 장면이던가요. 사실 이 영화는 거대한 프롤로그라고 봐도 좋을 겁니다. 퍼스트 어벤저라는 부제와 엔딩크레딧 뒤의 쿠키를 가장한 예고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요.
액션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술렁술렁 넘어가는 이야기는 나름의 미덕이 있는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적절한 접근이라고도 느껴지고요. 앞서 말했듯이 한국관객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캡틴아메리카를 제법 잘 포장했다는 점 만으로도 (그러니까 너무나도 미국적이라 로컬화된 영웅을 세계적 프랜차이즈로 공개할 수 있도록 컨버젼했다는 면에서) 충분히 평가받을만 합니다.

나치의 별난 시험 전투기 디자인들을 좋아하는 밀덕/항공덕들에게 꽤나 풍성한 선물잔치가 될 장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레드스컬이 나치를 배반하고 독자노선을 걸으며 경례도 '하일, 히틀러'에서 '하일, 히드라'(발음도 비슷 ㅋ)로 바뀌고 포즈도 달라지는데 그 차이란 게... 편손대신 주먹으로 그리고.. 무려 한손 대신 양손으로. ㅜㅜb 레드스컬, 센스가 꽝입니다. 다들 벌서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아요.

토니 스타크 아버지인 하워드가 나옵니다. 어벤저와의 느슨한 연결고리인 셈이고 앞서 아이언맨에서 던진 떡밥들을 정리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토니는 꽤나 늦둥이였나 봅니다. 영화에 나오는 하워드 스타크는 아무리 젊게 봐도 20대 중후반인데 토니가 줄잡아 60년생이라고 봐도 하워드가 아들을 본 건 40대 무렵이란 계산이니까요.

적들이 사용하는 광선무기는 오버테크놀러지와 신들의 힘의 결합체인 셈인데 여튼 상대방을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로 공중분해해버리는 무서운 무기임에도 희생자의 모습은 그냥 반짝하며 사라지는 정도입니다. 어마무시한 광선무기를 등장시킴과 동시에 심의도 잘 빠져나갈 수 있는 오래된 기법이지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끝까지 기다려주시길. 이 영화의 쿠키야말로 진정한 본편입니다. 영화는 거대한 프롤로그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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