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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기생령 - 고석진


기생령 - 고석진

 

이 영화의 개봉전 시나리오를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활자를 통해 접한 원작은 원형적인 원령들린 집 이야기의 변형이었지요. 특출난 작품은 나오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평균 이상의 작품은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평균보다 모자란 평범한 영화더군요.

사전에 시나리오를 접한 저로서 이 영화의 마케팅이나 홍보 방식은 뇌가 있기는 한건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1784

링크는 네이버의 기생령 페이지인데요. 분명 제작사에서 제공했을 줄거리엔 시나리오상 반전으로 숨겨둔 이야기가 첫줄부터 까발려져 있습니다. 앞서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장치들을 이런 식으로 까발려선 곤란합니다. 게다가 포스터는 또 어떻고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공식 포스터엔 영화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래선 영화 보기 전 조금이라도 검색을 한 관객이라면 상당히 김빠진 영화를 보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이 영화의 중요한 장치이긴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야만 했을까요? 일례로 '링'의 헐리웃 리메이크판 포스터를 보세요

영화에 대해 이미 아는 사람도 전혀 모르는 사람도 각각의 의미를 캐치할 수 있도록 주요한 이미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불길함도 주고 있습니다. 이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무언가를 만들 능력들이 있을 텐데 말이지요. (가장 처음 삽입된 티저 포스터를 보세요. 저기서 사람 얼굴만 빼면 그나마 괜찭지 않을까요? 과유불급...)

본 영화로 넘어오면, 영화엔 걸그룹 티아라의 멤버 '효민' 양이 매우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배경엔 영화제작에 참여한 '코어 콘텐츠 미디어'가 있죠. 뭐 제작사인 만큼 주요배역 대부분이 소속사 배우들입니다. 이건 나쁘게 볼것만은 아닙니다. 제작사와 배우들의 소속사가 같다면 그만큼 잘 통제된 일정 하에서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코어미디어의 영향력은 부정적으로 읽힙니다. 일례로 효민이 연기한 유린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 같은 거요. 제 기억으로 시나리오 원안엔 이런 장면이 없습니다. 순전히 광수사장의 애정이 가득한 보너스샷이죠. 병풍 조역으로 티아라 멤버들이 우르르 나오고 배경음악으로 티아라의 보핍보핍과 롤리폴리가 나오는 식입니다. 효민의 캐스팅도 티아라 팬클럽을 등에업고 흥행버프 좀 받아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겠지요. 그럼 뭐한답니까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버렸는데요... :-P

역시나 원안에서 상당히 비중있는 캐릭터였고 사전 언론홍보에서도 꽤나 부각되었던 '형사 철웅'역의 노민우도 그렇습니다. 전 당연히 이 캐릭터를 자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배우 노민우는 역시나 코어미디어 소속이고 효민과는 전작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함께 출연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이 드라마도 코어콘텐츠가 제작에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에서 사건의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역할이었다고요. 그런데 크레딧에 함은정과 함께 무려 '특별출연'으로 올라가 있는 노민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컷에만 등장을 합니다. 물론 원안 시나리오에서 철웅의 역할은 대부분 살아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 역할마저 줄이면 전체를 갈아치울 판이었으니까요. 촬영 시작 후에 배우 일정이 영화 일정과 맞지가 않으니까 급한데로 후다닥 찍어버리고 이런 식으로 올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부분이지요. 노민우 얼굴을 한 강력반 형사가 사건해결의 결정적 단서를 잡고선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리라고 관객들이 상상이나 하겠어요 (음.. 이게 새롭다면 새롭게 보이긴 합니다만)

연출에도 문제점이 도드라집니다. 일단 전체적인 톤은 안정적입니다. 색보정 기술이 발달한 요즘 한국 영화가 다 그렇듯 때깔은 좋아요. 무대미술이나 로케이션도 시나리오를 읽으며 떠올랐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전통적 특수효과가 쓰였을 장면들의 퀄리티는 헐리웃 부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포물로서의 연출이 너무 평이하고 안일합니다. 호러 쟝르물로 봤을 때 기생령에선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요. 안일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지요. 일단 영화에 이런 류의 공포영화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깜짝쇼 장면들은 충분히 들어있습니다. 개별 씬들만 뜯어서 보면 평균적으로 보통 이상은 하고 대부분의 장면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어요. 증거로 제 옆과 뒤에 앉은 커플 여자분들은 중간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비명을 지르며 짜증을 내더군요 (왜 깜짝 놀라고 나면 터져나오는 짜증 있잖아요) 하지만 이런 깜짝쇼가 다 똑같아요. 잠을 자다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밤중에 별 생각없이 거실에 나왔는데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유령등장, 또는 끔찍한 장면 등장 꺄악 비명 알고보니 꿈... 이 패턴이 영화 전체에 걸쳐 기억나는 것만 대여섯번 등장합니다. 세부적인 설정만 다르다 뿐이지 똑같은 장면들이에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봤을때 별 의미도 없이 삽입된 장면도 꽤 되고요. 이건 마치 옛날 스크린쿼터제에서 상영일수 맞추려고 의무적으로 한국영화 거는 극장 보는 느낌입니다. 의무방어전으로 별 고민없이 야심없이 기계적으로 넣은 장면들이란 거지요.


(아시발꿈)

각각의 장면을 떼어놓고 보아도 문제는 있습니다. 일단 편집의 속도 조절이 엉망입니다.  적당히 느리게 끌고가야 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자기가 마이클 베이나 폴 그린그래스라도 된양 카메라를 흔들고 장면을 쪼개버립니다. 공포를 줘야 하는 장면에서 컷이 너무 빨리 넘어가니 관객은 뭐야? 저거 무슨 장면이지?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끌려가는 거죠. 사전에 내용을 파악하고 간 저마저도 그랬으니 일반 관객이야 할말 다 했죠.

이외에도 중간중간 '이건 왜 들어갔지?' 싶은 장면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어떤 장면은 달랑 1초 정도 휙하고 지나가는데 브릿지라고 보기엔 의미도 없고 편집 호흡도 나쁜 것이 아마도 촬영은 했는데 버리긴 아깝고 이쯤에서 살짝 넣자라는 심정으로 편집한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연출은 특히 나쁩니다. 전 양가적 감정을 느꼈는데 원안 시나리오에서 가장 불만이었던 '비밀의 방' 설정을 영화에선 과감히 들어내고 적절히 수긍가는 공간설정을 했더라고요.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요 가장 감정이 극에 달하는 장면에서 장면이나 대사가 너무 나빠가지고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오는걸요. 원안에서 좋은 부분은 강화되고 나쁜 부분은 좋게 개선이 되어야 하는데 좋게 개선된 부분에 비해 좋았던 부분을 말아먹은 부분이 더 커서 좋게 봐주기가 힘들더라는 거죠. 얼마 전에 본 7광구에서 절실히 느꼈는데 대사만 전문적으로 수정을 해주는 작가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배우들이 국어책을 읽고 있긴 한데 그것이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면 결국 대사가 나쁜 거니까요. 활자로 찍은 대사와 실제 배우의 입을 통해 연기로 옮겨지는 대사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결과적으로 기생령은 평범합니다. 야심도 없고 특출남도 없지만 그렇다고 공포 쟝르로서 본분을 잃고 방황하거나 퀄리티가 현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깜짝쇼를 즐기며 한시간 반 시원하게 보내고 싶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란 얘기죠. 트랜스포머 3를 보면서 느낀 감정과 비슷하달까요.


어린아이 캐릭터를 매우 가혹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역 배우들이 혹여라도 자기 나온다고 영화 봤다가 상처입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개인적으론 그런 장면들이 심의에서 살아남은 게 고맙긴 하더군요. 아.. 영화가 조금만 더 괜찮았다면)

효민의 캐스팅에 대해 꿍얼거렸지만 사실 효민양 연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노력한 티가 팍팍나고 첫 영화 치고는 잘해주었어요. 게다가 효민-한은정을 자매로 캐스팅한 부분은 스크린으로 보니 매우 적절하더군요. 둘이 분위기가 무척 닮아서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어요.

노민우는 내여자친구는구미호에선 백설기 같이 나오더니 여기선 까무잡잡 태닝을 하고 나왔더군요. 멀대같이 큰 청년이 태닝기계 안에서 드러누워있을 모습을 상상하면 왜 실실 웃음이 나올까요.

황지현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제대로 된 얼굴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어요. 이 분이 한때는 '현빈의 연인'이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기생령 홍보인가 티아라 홍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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