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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 루퍼트 와이어트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루퍼트 와이어트


잘 만든 영화는 보통 잘 만든 이야기와 함께 합니다. 물론 이야기 외적 요소로 평가받거나 아예 전통적 이야기 방식 그러니까 서사법을 무시함으로서 평가받는 영화들도 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영화는 전통적 서사법을 잘 구사한 경우들이죠.

처음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라는 길고도 괴상한 제목의 (비영어권 국민으로서 of the..가 두번 연속 나오면 이상해요. 영어권 애들도 어색해 하는 거 같긴 한데. 우리로 치자면 한국의 대구의 지하철 같은 식이니까요) 영화 소식을 들었을 때 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헐리웃 내에서도 시큰둥 했나봐요 이 영화의 전작격인 팀 버튼의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가 2001년 작품이고 그때부터 제작 이야기가 나왔으니 근 10년만에 제작된 속편이거든요. 그리고 공개된 예고편도 전 심드렁했습니다. 이모션 캡쳐로 만들어진 유인원의 얼굴이 너무 사람같아서 굳이 CG를 써야했나 의문스럽기도 했고 일단 비쥬얼이 심심했습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CG 침팬치와 고릴라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라니 우린 마이티 조 영이나 피터 잭슨의 킹콩을 봤단 말입니다. 유인원이 다 뭐랍니까 고질라에 집채를 넘어 마천루 건물 만한 외계 생명체나 심해 생명체 것도 아니면 자동차로 변신하는 기계 생명체가 뛰노는 곳이 현대 헐리웃 속 미국 아닙니까.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혹성탈출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았습니다. 찰톤 헤스턴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김빠진 속편들을 생각하면 굳이 만들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정작 뚜껑이 열리자 시사회 반응들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료시사를 통해 보게 된 영화는 제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서사가 좋습니다.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서로 다른 세 개의 내러티브가 헐겁게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창조자와 실험체의 이야기의 변형입니다. 조급증 걸린 과학자의 인간적 실수나 모험의 결과물인 '괴물'이 창조자와 또는 그런 괴물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계와 반목하는 이야기죠. 다른 하나는 '탈옥' 이야기입니다. 감옥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다만 주인공이 유인원이니 여기서 감옥은 싸가지없는 주인 부자가 운영하는 덕에 학대가 만연한 동물 보호소입니다. 무시무시한 비쥬얼/히스토리를 가진 독방의 사내도 있고 현명하지만 체제에 순응한 조력자도 있고 저 잘난 맛에 사는 기존의 짱도 있습니다.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동물 보호소 이야기에서 주인공 시저는 앤디 듀프레인 처럼 보이기도 하고 알카트라즈의 모리스 같기도 하고 석호필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론 신화적 영웅이 이끄는 엑소더스 이야기입니다.

세 개의 큰 틀을 기본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는 한 명의 영웅이 창조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기 때문에 관객은 깊이 빠지게 됩니다. 감정이입의 대상이 CG로 만든 말하는 침팬지라는 걸 잠시 잊게 되는 거죠. 이건 이모션 캡쳐나 하나하나 움직이는 털의 표현 같은 기술적 성취도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큰 도움은 되겠죠. 하지만 궁극적으론 서사의 승리입니다. 아무리 듣고 또 들은 설정이라도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또 다시 감동하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좀 불편한 구석은 있습니다. 너무 관객의 감정을 훌륭하게 끌어내다보니까 이전 작품들과 괴리가 생기는 거죠. 일단은 이번 영화는 이전의 시리즈나 리메이크작의 연장선에 있지 않습니다. 설정으로만 따져 보아도 맞지 않는 구석이 한 둘이 아닙니다. 여기에 연연해서 이전 작품들을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이건 그냥 리부트입니다. 스타 트렉이나 배트맨 처럼요. 하지만 우린 여전히 이전 혹성탈출을 기대합니다. 유인원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인간을 학살/학대하는 영화요. 물론 인간에 조력하는 유인원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전 영화 속 유인원은 공포의 대상이며 '괴물'들입니다. 주인공은 WASP여야 하고 옆에는 야시리한 차림의 여성이 있어줘야 하고 뭐 그런 거요. 하지만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유인원 시저입니다. 공포의 대상이며 악의 축은 인간들이고요 (물론 조력자인 인간들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 바꾸기를 영화는 훌륭히 소화해냅니다. 덕분에 앞서 말했다시피 관객은 스스로 당혹스러울 만큼 유인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게 됩니다. 마치 아바타에서 나비족에게 감정이입하듯이 말이지요.

아바타 이야기를 꺼낸 김에, 영화의 실감나는 CG 캐릭터를 만들어낸 기술적 성취를 무시하지 못하겠습니다. 예, 애써 말을 아꼈지만 이 영화의 영상기술이 보여주는 캐릭터의 완성도는 뛰어납니다. 아바타 이후의 영화가 어떻게 발전할 지 보여주는 좋은 선례라고 할까요. 이제 데드 밸리는 없습니다. 관객들은 CG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면 속 캐릭터에 몰입하게 됩니다. 물론 그 뒤엔 앤디 서키스 같은 장인의 연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거지요. 이건 현재 디지털 캐릭터의 한계이기도 할 겁니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은 예전 방식의 변형인거죠. 고무탈 대신에 그래픽 레이어를 입혔을 뿐입니다. 하지만 또 모르죠, 한 10년 쯤 뒤에는 이모션 캡쳐가 아닌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진 극사실적 캐릭터가 관객의 이모션을 자극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허이구 한글 제목도 영어제목 만큼이나 어색합니다. 불필요한 수식어와 일본식 한자표현의 결합이라니요!)은 현대 헐리웃 기술이 전통적 서사를 적절히 서포트 해줄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원숭이(침팬치지만...)가 웃기거나 무서운 게 아니라 눈물샘을 자극하는 격한 감동을 주는 기념비적 순간이기도 하고요.


(NO~~~~~!!)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금문교에서 펼쳐집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액션의 배경으로 활용된 금문교지만 유인원이란 캐릭터들 덕에 이번엔 매우 새로운 각도로 활용됩니다. 금문교 바닥에 매달려 전술행동을 펼치는 오랑우탄이라니... 아.. 웃긴데 멋져요.

유인원 칭찬만 늘어놓았는데 인간 배우들도 제 몫을 해주고 있습니다. 제임스 프랭코는 무게감있는 배우로 성장할 것 같아요. 존 리스고우도 힘을 뺀 연기로 훌륭하게 조력했고 프리다 핀토는 여전히 예쁘고(응?) 브라이언 콕스 영감님은.... 그냥 알바뛰러 나온 거 같고..
아차, 말포이도 빼놓으면 안되겠죠. 말포이는 그냥 말포이입니다. 아버지 빽 믿고 말썽부리다가 큰코 다치는 역할이요.

원숭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전작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다르다는, 원숭이완 다르다능..) 유인원 세상이 왔을 때에 원숭이의 포지션은 참 애매할 것 같습니다.

원작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제대로 본 원작은 1편 밖에 없고 그나마도 토요명화 시절에 본 저로선 텔레비젼 화면에 스치듯 나온 찰톤 헤스턴 밖엔 못알아보겠습니다. 아차... 시저가 가지고 노는 자유의 여신상 장난감도 있군요.

영화 속 또 하나의 교훈,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나름 불쌍하다면 불쌍한 옆집 파일럿 아저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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