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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링크 - 우디 한


 

링크

우디 한

무언가에 홀린 듯한 남자 이재현(류덕환)은 혼수상태의 여동생이 언젠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던 중 동생이 죽자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한다. 대학선배 구성우(김영재)의 도움으로 다시금 새로운 삶을 시작할 무렵, 매력적인 여고생 수정(곽지민)을 만난다. 다른 사람의 머리 속 생각, 이미지 심지어 촉감까지 모든 감각을 공유하고 빼앗는 특별한 능력이 수정에게 있음을 알게 된 재현은 그녀의 능력 속에 감춰진 더 커다란 음모가 그의 숨통을 점점 조여 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데.

네이버 포탈에 걸린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일단 이걸 그대로 믿으시면 안됩니다. 스토리만 보고 영화의 정체성에 대해 오해한 채 이 관람을 택한 저 같은 관객은 결국 욕을 내뱉고 말테니까요. 영화의 시작은 학교에서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키는 소녀를 보여주면서 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무언가 그럴듯한 세트에서 검사를 받고 있는 소녀와 그 아이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MIB스런 인물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로 시간을 점프해 현재로 넘어오는 거지요. 좀 투박하긴 하지만 여기까지 전 특별한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영화의 사전정보를 통해 예상한 한국형 '초능력자' 이야기에 걸맞는 시작이었으니까요. 좀 촌스럽더라도 용서해줄 맘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야기의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파이어스타터 같은 영화도 될 수 있고, 스파이더맨이나 블랙엔젤도 될 수 있을 것이고 좀 거창하게 가면 인셉션 같은 영화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하다못해 존 트라볼타가 악당으로 나왔던 퍼니셔나 니콜라스 케이지의 고스트 라이더같은 '스토리'라도 기대했어요.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저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영화의 정체에 대해 까발려야 겠네요. 이 영화는 '링크'라는 가상의 초능력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렇다고 초능력자를 다루는 히어로물이나 초능력 스릴러물이 아닙니다. 사실은 치정극입니다. 곽지민이 연기한 박수정은 링크란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팜므파탈로서의 기능이 더 강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이 고개를 드는데 이야기와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링크란 능력이 심지어 그 묘사조차 요사스러운 것을 보고있자니 원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끼어든 게 아닌가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원래의 이야기는 그냥 남녀간의 애정이 얽힌 치정스릴러였는데 막판 반전과 기존 유사영화와의 차별화를 위해 애써 떠올린 것이 '링크'라는 초능력 같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좀 어거지스럽다고 할까요, 아니면 뜬금없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기도 하고.

영화의 엔딩에 사용된 반전은 링크란 초능력을 적극 활용하긴 하지만 사실 그보다 좋은 반전들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굳이 초능력을 쓰지 않아도 가능한 트릭들이요. 그리고 초능력을  지금보다는 더 괜찮게 활용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능력자 이야기가 아니라고 칭얼거렸지만 그 부분을 빼놓고 순수하게 치정극으로만 보아도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단 인물들의 동기가 너무 약합니다. 성우는 순전히 돈 때문에 움직이는 인물이고, 재현은 이용당하기 위해 넣은 캐릭터로 줏대없이 휘둘리고 있어서 동기랄 것도 없고, 수정의 동기는... 이해는 가지 않지만 애증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수정의 음모였다라며 그녀를 완전한 팜므파탈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그냥 철없는 사춘기 여고생의 망상 같아요. 아무튼 이런 동기의 설명도 부족하거나 너무 빤하게 표현되어 설득력이 떨어져서 마지막 파국의 하일라이트에선 그냥 생뚱맞기만 합니다.

링크란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또 다른 의문이 듭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초능력이란 설정에 대해 조소를 날리는 듯한 묘사들이 많다는 거죠. '링크'라고 선언하듯 초반부에 설명하지만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대화에서 초능력은 '그거'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링크가 사람의 정신을 연결해 황홀경을 경험케 한다는 설정이 합쳐지면 다음과 같은 대사들이 터져나오는 거죠.
"그거 하자. 너 아니면 그걸 할 수 없잖아."
"당신 목적은 그거하는 거잖아."
"그거를 하면 너와 내가 연결된 거 같아. 한 몸이 된거 같아."
노골적으로 링크란 능력을 섹스와 연결하는 대사들은 듣기가 다 민망할 정도입니다. 여러가지 의미로요. 몇 차례 등장하는 링크 장면도 절반이 섹스를 연상시키는 것이고 심지어 영화에서 가장 수위가 높은 베드씬도 링크를 하는 가운데 등장합니다. 섹스 외에도 마약을 연상시키는 묘사도 있지만 (수정이의 자살한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세요) 그 역시도 어찌 보면 섹스에서 오는 쾌감으로의 연결이니 쌤쌤입니다. 여튼 기껏 끌어온 초능력을 연신 섹스랑 연결시키며 치정극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니 "난 정통 치정극을 하고 싶단 말이야!"라는 작가의 한탄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튼 링크는 결코 사전정보에서 예상가능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준 높거나 차별화 된 치정극도 아닙니다. 그냥 어중간하게 두 가지 쟝르 사이에 걸친 소품입니다. 예, 실험적인 소품 수준입니다. 이게 TV 단막극이었다면 제 감상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경우 표현의 수위가 조절되었겠지만 차라리 그러는 편이 지금의 이야기엔 프럴스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할 수 있을테니까요.

감독이 미국 인디영화계에서 활동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는데, 글쎄요. 한국의 시스템이 그의 재능을 억누른 건가요. 아니면 그냥 그쪽 아시안-아메리칸 인력 풀이 좁아터진 건가요.

류덕환, 곽지민, 김영재, 정찬, 이지현 같은 가능성을 인정받은 젊은 연기자와 자기 자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할 일을 할 줄 아는 중견 연기자들이 나옵니다만 모조리 낭비되고 있습니다. 정찬, 이지현 같은 경우는 출연 분량이 적은 게 고마울 정도긴 한데 그마저도 눈요기감인지라 안타깝고. (대체 정찬은 왜 나왔답니까.) 류덕환이나 곽지민은 대체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곽지민은 인디와 메이저 조연을 오가며 경력을 쌓고 있는데 기왕 노출연기 할 거면 이보단 좋은 작품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사마리아에서 곽지민과 한여름 두 배우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는데 이후 행보들이 둘 다 고만고만해서 아쉬워요.


(그런 와중에 이런 워스트 드레서 같은 모습까지 보여주면 더 안타깝고...)

류덕환은... 유난히 스릴러,미스테리에 치중하는 듯 보이는데요. 대부분이 졸작이거나 어중간하거나 해서 이젠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재능있는 배우인만큼 역시나 제대로 된 영화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특히 이 영화에선 너무 낭비되고 있어서 보는 사람이 다 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