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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콜롬비아나 - 올리비에 메가턴


 

콜롬비아나

 

 

올리비에 메가턴

중딩시절 시네마 천국을 통해 처음 뤽 베송이란 '불란서' 출신 감독을 접했습니다. 마지막 전투, 서브웨이, 니키타, 그랑브루... 헐리웃 영화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차별적인 비쥬얼과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을 가진 영화쟁이는 '작가'로서 소개되고 있었지요. 그리고 레옹이 나왔습니다. 학교에선 한동안 그 이야기들 뿐이었어요 벙거지모자, 썬글래스, 화분 그리고 마틸다.

그 시절만 해도 뤽 베송의 필모그래피가 지금같은 양상으로 뻗을줄은 몰랐습니다. 니키타나 레옹처럼 적절한 아드레날린과 함께 정서적 울림까지 전해주는 작가가 될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죠.

여튼 지금의 '뤽 베송 사단'이란 타이틀은 예전의 아우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그랑 브루나 레옹을 택시 시리즈나 트랜스포터 시리즈랑 나란히 놓고 비교하긴 힘들어요. 그렇다고 최근의 그의 영화들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전 적어도 트랜스포터 시리즈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테이큰은 매력적인 마이너라고 생각하니까요. 작가로서의 뤽 베송은 퇴색되었지만 대신 그 자리엔 자국 자본과 헐리웃 자본을 적절히 섞어내 관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쒼나는 영상을 만들 줄 아는 장인이 자리잡았습니다. 적어도 제 개인적 감상으로선 말입니다. (뤽 베송이란 네임밸류 아래에 워낙 다양한 기획들이 진행되다 보니 그의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데이터를 뒤지다 보니 엉뚱하게 한국 소설 진시황 프로젝트의 영화화 기획도 끼어 있더군요. 이거 만들기나 하는건지...)

콜롬비아나는 흔히들 생각하는 뤽 베송표 액션물입니다. 해마다 잊지 않고 등장해서 한시간 반동안 뇌를 싹 비우시고 실실 거리며 볼 수 있는 단순한 플롯에 장인의 향내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적 액션들이 펼쳐지는 영화 말입니다.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 되는 점은 주인공이 근육질 백인 남자가 아니라 말라깽이 모델 몸매의 흑인 여성이란 점이겠지요.


그 외엔 이전 영화들을 짜집기한 퀼트 같은 느낌입니다. 야마카시가 나오고 와이어 스턴트가 나오고 화끈한 총질 장면이 나오고 스토리는 단순한 영화요.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어릴적 조직 내 권력 싸움의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소녀 카탈리아라는 소녀가 미국으로 넘어와 삼촌 밑에서 자라며 킬러로 성장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한다.

역시나 단순명료한 스토리입니다. 이야기의 재미를 위한 장치들이 몇 가지 있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객은 머리를 비운 채 화면이 제공하는 정보를 그때그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인물의 고민도 작위적이고 평면적이라 종종 뜬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삼촌과 카탈리아가 도서관에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을 보세요. 그럴거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이제 와서 둘다 무슨 소리 하는거야 싶습니다. 애초에 잔인하게 살해된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아이가 킬러가 되어버린 부분에 대한 고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부분부터 '우리 너무 심각하게 가지 말자'라고 선언하는 거죠. 아무리 쓰레기 범죄자라지만 22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살해했다면 (그리고 그 목적인 복수를 위한 단순한 이용과 더불어 돈벌이였다면) 그 사람은 이미 괴물입니다. 그런 괴물에게 감정이라니요, 사랑이라니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본다면 매력적인 순간들이 은근 많은 영화입니다. 사실 뤽 베송표 액션 영화들이 대게 그렇습니다. 단점 만큼 장점도 도드라지죠. 일단 초반부 액션부터가 그렇습니다. 다닥다닥 언덕을 따라 집들이 들어선 남미를 배경으로 10살짜리 소녀가 수준 높은 야마카시 액션과 함께 갱단으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을 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액션이야 대역이겠지만 그 외의 장면에서 아역 배우의 연기나 느낌이 좋아서인지 나중에 성인 연기자로 바뀌면 조금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한국 사극 초반에 흔히 느끼는 그런 감정 말입니다.)


물론 카탈리아 역의 조 살다나 역시 매력적입니다. 불안해 보일 정도로 깡마른 그녀의 몸매는 킬러란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런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해 적극 활용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액션을 넘어 행위예술이라도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른 여성에게서 느끼는 특유의 섹시함도 잘 강조되어 있고요. 몇몇 장면은 특유의 움직임과 깡마르고 길쭉한 몸 때문인지 아바타의 네이티리가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악역들은 좀 고만고만합니다. 트랜스포터 시리즈나 테이큰에서도 느꼈는데 뤽 베송 영화 특히 그가 각본에 참여한 영화에서 악당들은 좀 조악합니다. 아니.. 주인공이 너무 쎈건가. 게다가 어린 아이가 15년만에 부모의 원수를 찾아간다는 설정 때문인지 복수의 대상들이 이미 '할배'들입니다. 물론 나름 젊은 배우들이 노역 분장을 하긴 했지만 새치가 희끗한 노인네들이 별다른 방어도 하지 못하고 젊은 여자에게 죽어나가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긴 힘들지요.

마이클 바탄을 오랜만에 보는 건데... 쉬리처럼 여자 킬러를 쫓는 요원이나 아니면 여주의 조력자 같은 모습을 예상했더니 엉뚱하게 민폐캐릭터로 등장하네요. 그래고 남여간 고정된 성역할이 바뀐 설정만은 괜찮았습니다. '당신을 기다릴게요'라는 식의 엔딩에 쿨하게 석양으로 사라지는 '여자 킬러'라니 ㅋㅋㅋ


극중에선 아마도 사건 종결후 인간을 죽인 혐의로 안락사 당했을 카탈리아의 조력자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철저히 이용당하고 팽 당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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