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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최종병기 활 - 김한민


 

최종병기 활

 

김한민

최종병기 활이란 니뽄 스러운 제목의 영화는 개봉전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었지만 씨크릿가든으로 다시 한번 국민적 인기를 끌어낸 하지원과 국내최초 3D 크리쳐물 (약간 말장난이죠. 국내 최초의 3D영화도 아니고-나탈리 국내 최초의 크리쳐물도 아니-구)용가리, 불가사리 등등 거든요. 다만 이 두가지 요소를 합하면 최초란 거죠) 등의 요소를 홍보 전면에 내세운데다 윤제균의 JK픽쳐스, 모픽, CJ라는 배급,기술,제작의 3박자까지 덩치를 불린 7광구가 대항마였거든요. 거기다 고지전, 퀵, 그리고 여름 시즌을 맞아 수입될 헐리웃 블록버스터까지 경쟁은 만만치 않아보였습니다. 최근 제작된 사극 영화들의 고만고만한 흥행성적도 걱정이었고요.

하지만 먼저 개봉한 7광구가 졸렬한 완성도를 보이며 악평 소나기를 맞는 사이 한 주 밀려 개봉하게 된 이 영화의 시사회에선 좋은 입소문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기자시사에서의 좋은 소문을 듣고 유료시사로 한 주 먼저 영화를 보게 되었죠.

감독 김한민의 전작 '극락도 살인사건'은 고립된 환경을 배경으로 일본식 퍼즐 미스테리와 한국적 배경을 적절히 섞은 영리한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반전이 밝혀졌을 때 관객들은 영화 중간마다 뜬금없이 삽입되어 기술적 문제가 아닌가 의심까지 했던 붉은 글씨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감탄은 인상적이었고요. 사실 극락도 살인사건도 개봉 전엔 불안해 보이던 영화였습니다. 캐스팅은 어딘지 비어보이는 게 불안했고 감독은 신인이고 게다가 사전 정보로는 이 영화가 코미디인지 미스터리인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시실리2km의 아류가 아닌가 의심까지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영화가 인상적인 완성도와 그에 버금가는 흥행성공을 거둔 것은 뻔해보이던 소재를 쟝르의 틀 안에서 적절히 조율하고 섞어 꽤나 훌륭한 레시피를 만들어낸 시나리오의 힘이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이야기는 힘있게 조율됩니다. 잡혀간 동료/가족을 구출해 적으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의 추격전 그리고 마지막 반격이라는 빤한 구조는 그만큼이나 단순합니다. 직선적 서사 구조라서 확장하기도 힘들고 자칫 곁가지로 빠지면 엄청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는 이런 구성의 장단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고 적절한 배분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쉴새없이 관객을 몰아칩니다. 그리고 그런 구성을 관객이 납득할 만한 캐릭터들과 갈등이 극 전체를 관통합니다. 역시나 시나리오의 힘이지요. 7광구가 범했던 기술에 묻혀 이야기를 깡그리 무시하는 짓 같은 건 이 영화에 없습니다.

아마도 두 영화 모두 감독이 각본까지 썼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한민은 감독으로서도 각본가로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보여줄뿐 아니라 때문에 영화의 정체성을 잘 이해하고 통제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영화로 옮길 때 기대할 수 있는 장점들이 부각된 케이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일단 이 영화의 장점은 서사가 단순명료하다는 겁니다. 구출에 이은 도망과 추격 마지막 반격의 구조는 정석대로 운용되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에게 분명한 개성과 나름의 이유가 부여되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수에 비한다면 낭비되는 캐릭터가 거의 없습니다. 자꾸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7광구에 동시에 출연한 이한위의 마지막을 보세요. 어쩌다 보니 두 영화에 동시에 출연하고 역시나 동시에 영화에서 죽게 되는데 양쪽에서 그의 역할이나 비중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울림은 전혀 다르죠. 그만큼 관객은 이야기에 몰입하고 남이 일행에게 동화합니다.



장점은 또 있습니다. 제목에 떡하니 박힌 '활'의 활용과 거기에서 파생된 액션연출도 뛰어납니다. 일단 활이란 소재는 밀리터리적 요소로 활용합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며 감탄과 비판의 시선을 날리다 결국엔 '아.. 그건 좋은 영화였다.'라며 감회를 표현했을 궁덕이나 밀덕들이 꽤 있을 겁니다. 한 예로 이런 기사도 있더군요.

영화 속 활의 고증이나 과학적 분석을 다룬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10818/39638728/1

중요한건 영화가 이런 요소를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는 겁니다. 국궁이 이러저러해서 뛰어나고 그래서 우리 민족이 활 잘쏘는 것으로 유명하고 운운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면 영화가 아니라 다큐였고 어느 쪽이던 지루했을 겁니다. 하지만 감독은 활에 대해 꼼꼼히 조사하면서도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에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둡니다. 적절한 고증과 설정을 하면서도 이야기에 묻이거나 반대로 이야기가 그것에 묻히게 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액션의 연출에 있어서도 칭찬할 만 합니다. 사실 다양한 무기가 나오는 현대전도 아니고 게다가 주소제인 만큼 '활'을 메인에 두고 연출된 전투 장면이 반복됨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습니다. 각각의 씬에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고 배경이나 상황, 장치들이 적절히 변주되기 때문이지요. 이 부분에선 '무사'란 영화를 떠올렸는데요 화려한 출연진과 그만큼이나 화려한 연출, 중국 올로케와 거대한 세트에 이전까지만 해도 보기 힘든 액션 장면이 연이어 나오지만 영화 중반 이후엔 보는 입장에서 피로감이 느껴졌던 것이 액션 장면들 사이에 스토리적 차별성이 부족했고 단지 보여주기 위한 액션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거든요. 이 영화에선 그런 지루함이 없었다는 점은 액션 연출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냥 칭찬만 할 만큼 완벽한 영화란 얘기는 아닙니다. 평범한 관객 입장에서 튀어보이는 구석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자막 문제입니다. 배경을 요약해서 보여주겠다는 의도인데 굳이 그렇게 딱딱하고 자세한 자막을 집어넣어 역사스페셜 스럽게 만들어야 했나 (자막의 타이밍이나 내용이나 타이포나 모두 본편에 맞지 않는 분위기였죠)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특히나 전작에서 자막을 반전을 위한 장치로 효과적으로 사용한 감독이기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결말 부분도 불만입니다. 일단 빠르게 흐르던 극이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선 좀 늘어지는 맛이 있습니다. 감정을 충분히 끌어내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쳐져요. 게다가 클라이맥스란 말입니다. 그리고 결론도 아쉽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 했나요. 두 캐릭터가 극을 통과하면서 너무 매력적인 모습만 보여줘서 더욱 아깝습니다. 그런 결말이 주는 효과도 괜한 신파와 비장함 (우리가 한국 영화에서 지긋지긋하게 보았던)이라서 그전까지의 감흥을 오히려 깨는 구석도 있었고요.

어쨌든 단점 보단 장점이 크고 많은 영화입니다. 활이란 소재를 중심에 둔 액션 사극이 이제서야 나왔다는 점은 한국 크리에이터들의 직무유기를 의심할 만 하지만. (그렇게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들 떠들면서 말이지요) 늦게나마 이런 영화가 이 정도의 퀄리티로 나와줬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귀여우신 주신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