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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도가니 - 황동혁


 

도가니

 

 

황동혁

2005년 실제 벌어진 사건을 토대로 쓰여진 공지영 작가의 원작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은 광주에서 벌어졌으며 영화 속 무진시는 가상의 도시입니다)


(원작 인증...)

안개의 도시 무진, 청각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인 자애학원에 미술 교사로 부임하게 된 강인호는 첫날부터 학생들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며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고 외딴 곳에 위치한 이 자애학교란 곳의 숨겨진 진상이 하나씩 밝혀지며 인호의 불안은 실체를 드러냅니다. 진실이 드러난 순간 인호와 인권단체 간사 유진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고 있던 관객들까지 몸서리를 치게 되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슬프지만 특별한 게 아닙니다. 한국이란 나라의 뒤틀린 권력관계와 잘못된 제도 거기에 기생하는 인간들과 그들이 잘도 이용해 먹는 사법체계 속에서 너무나 쉽게 벌어지고 그만큼이나 자주 언론에 다루어지는 일이지요.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사회고발 프로그램 다시보기를 조금만 뒤져보면 비슷한 이야기들을 여러 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도 모르고요. 뉴스를 통해 우리가 접하는 건 요약된 사건입니다. 무언가 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끔직한 것인지 그리고 피해자들이 겪는 상처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막연히 예상할 뿐이지요. 영화는 그런 사건 속 인물들을 정면에 배치하며 우리에게 가해자의 가면을 벗기고 피해자의 현실을 턱 내밀어버립니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말못하는 장애를 가진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그 고통의 진폭을 더욱 크게 합니다.



극장 안에선 간간히 울음소리가 이어졌습니다. 피해자들에게 감정이입해서인지도 모르고 너무나 추악하고 끔직한 범죄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화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터져나온 건 말 그대로 '탄식' 이었습니다. 정말 이 정도야, 이게 현실인가? 라는 안타까움. 차라리 영화라고, 과장된 거라고, 거짓말이라고 무시해버리기에 관객들이 직접 듣고, 보고, 체험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겠지요. 막연한 지식이 실체화 되고 다시 체험이 되는 순간 그것이 아무리 극화된 간접 체험이라도 접하는 사람으로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실제사건의 피해자들의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일지 다시 막연하게 상상하게 됩니다.)

실화라는 무거운 축을 걷어버리면 잘 만들어진 드라마가 있습니다. 영화는 무겁고 슬프지만 관객들이 공감하게 만드는 극적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건 현실이야'라는 인지를 하게끔 만드는 장치들도 여럿 있습니다. 영화 중반, 자애학교의 실상이 방송을 통해 (물려 YTN HD로...-_-) 전해지자 절대권력으로 보이던 악당들이 줄줄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픽션이었다면 여기서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며 해피엔딩이겠지만 사실 그건 전반부만큼이나 끔찍하고 절망적인 후반부의 시작일 뿐이지요. 법정장면은 어떤가요. 멍청해 보일 만큼 방어논리나 증인 섭외가 엉망인 피고측과 그 변호인이 계속해서 검사에게 깨지는 장면을 보여주고 너무 똘망해서 보는 관객이 다 미안해질 정도의 소녀가 그 작은 몸으로 적의를 받아치는 반전을 보여주지만 판결이 내려지는 부분은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물증이 등장하는데 이런 식으로 무마되는 건 좀 이상해 보이긴 합니다. 실제 사건에서도 이런 증거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느껴지고) 그래도 대중영화의 외피를 쓴 때문인지 결말은 현실과 달리 소극적 해피엔딩을 지향하지만 크레딧이 올라가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불편합니다. 극장을 나오며 어떤 관객이 한 말처럼 '뭐 이런 영화가있어. 괜히 봤잖아.'라며 추악한 현실을 외면해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이런 영화의 목적은 공지영의 소설 만큼이나 분명합니다. 현실의 추악함과 부조리를 드러냄으로서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을 변호함과 동시에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희망하는 거지요. 이건 일종의 경종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에서나 극영화에서나 엔딩에선 악당들이 모조리 극형을 받았으면 하는 맘입니다.

후반부 법원 앞 시위 장면은 좀 오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청 앞, 한진중공업 시위현장 같은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며 너무 정치적으로 읽히거든요. (극적 구조로 봐도 신파적 감흥 외에 큰 기능은 없어 보이고요 뭐 평범한 시민의 현실에서의 무력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만 제가 언급한 정치적 이슈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죠) 재미있는 건 영화 상영 전에 '4대강 치적'을 기리는 공익(?) 광고가 붙었다는 거지요.

극중 인호 어머니로 등장하는 김지영씨의 사투리는 돌아가신 조모님하고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습니다. 경북 북쪽 지역 사투리를 아주 지대로 구사하는데 정작 그쪽 출신은 아니신 걸로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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