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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Crack (2009) - 조던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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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영국의 외딴 기숙학교, 엄격한 규칙의 고립된 그곳에서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카리스마 넘치는 다이빙 교사 미스 G와 그녀를 추종하는 여섯 명의 소녀 디, 릴리, 포피, 로렐, 로지 그리고 퍼지. 그녀들만의 특별하고 견고하던 세계는 스페인 귀족 출신의 아름다운 소녀 피아마가 전학 오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 네이버 영화 中

부수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세 사람이 있다. 미스 G, 피아마 그리고 디.
이들 사이의 오해와 질투, 그리고 신경증적 집착이 뒤얽히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기숙학교라는 배경은 사이사이 다이빙을 즐기며 뛰노는 소녀들의 모습만 아니라면 감옥이나 수용소라고 해도 좋을 만한 환경이다. 통제된 생활, 외출의 제한, 딱딱한 규율과 맛없는 식사. 제한된 공간에서 미스 G는 아이돌과도 같은 존재다. 그녀는 아름답고 비밀스러우며 일면 퇴폐적이기까지 하다. 선생님이며 부모의 대리자이고 롤모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녀를 동경하고 숭배하며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피아마는 일상을 깨뜨리는 존재이며 우상을 모독하는 인물이다.처음 아이들이 그녀에게 반발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불안정한 사춘기의 어두운 회고담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종교적 테마로도 해석할 여지가 보인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미스 G는 신(그러니까 God)이고 피아마는 그들의 신앙을 시험하는 악마나 이국에서 찾아온 이단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숭배하던 신의 부조리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개중 가장 신실한 신도인 디는 미스 G가 피아마를 애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선 그것을 피아마의 잘못으로 치환한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피아마를 범한 것은 미스 G라는 것을 알지만 그녀의 이성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편한대로 해석해 버린다.
'피아마가 선생님을 유혹해서 파멸로 몰고가려 해!'
그리고 미스 G가 살짝 등을 떠미는 순간 디를 선두에 세운 아이들은 성전에 임한다. '우린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 나중에 한 아이가 읊조리듯 종교적 광기는 단 몇 명의 선동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 대부분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따르게 마련이란 것도 알고 있다.
이단인 줄 알았던 사람은 선지자이며 순교자였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는 우민의 모습을 '디'는 그대로 재현한다. 굳게 믿어왔던 신이 평범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고 개인적이고 사악한 욕망으로 신도들을 이용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디는 스스로 미스G를 떠나고 기숙학교를 떠나 세상으로 나온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새끼처럼. 땅을 뚫고 나온 새싹처럼. 그리고 그녀가 소중히 품에 껴안는 것은 피아마가 남긴 향수와 여섯 소녀가 그려진 수첩이다.

미장센이나 소품배치 로케이션 등 화면이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다. 감독 조던 스콧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아버지가 무려 리들리 스콧... 말인즉슨 삼촌은 토니 스콧. 무서운 패밀리의 무서운 딸 되겠다. 뛰어난 영상미도 보고배운 게 그거라서....라는 건가.

학생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건 역시 에바 그린. 붉은 입술에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 미스G는 (여기선 박칼린이 살짝 떠올랐다.) 뒤로 갈수록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무너진다. 중간에 피아마에게 줄 빵을 사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을 때나 (그녀의 과거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었나. 아니면 남자가 얽힌 추악한 과거, 정신병 전력?) 마지막 피아마의 손에 흡입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의 장악력은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