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ncy's critic

써커 펀치 (Sucker Punch)


 

써커 펀치

 

잭 스나이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는 것은 여러면에서 중요할 것입니다. 개중에서도 당연히 참조되어야 할 작품은 바로 <300>과 <와치맨>입니다. 각각 프랭크 밀러와 알란 무어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두 영화는 감각적 영상, CG로 창조된 공간, 비현실적인 액션 등등 영화적으로나 영화외적으로나 비슷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 영화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 바로 <써커 펀치>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재산을 가로채려는 양아버지의 폭행에 저항하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모략으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베이비 돌'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전두엽 절제술을 받아 기억이 지워질 운명에 놓인 그녀는 어떻게든 병원을 탈출하려 합니다. 그녀가 병원에 갇힌 시점에서 현실엔 두 층의 환상이 덧 씌어집니다. 정신이 불안정하거나 또는 불안정하다고 조작된 소녀들이 갇혀 지내는 누추한 현실위에 하나의 막이 씌어지면 묘한 쇼와 매춘이 이루어지는 비밀 클럽이 되고 다시 거기에 한 층 더 막이 드리워지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채 판타지적인 배경 속에서 일본도와 해칫을 휘두르며 총질을 해대는 환상이 나타나는 식이지요. 이제 베이비 돌은 병원을 탈출하기 위한 다섯 개의 아이템을 모아야 합니다. '지도, 칼, 불, 열쇠' 그리고 아직은 알 수 없는 비밀의 다섯번 째 아이템 말입니다.

줄거리만 봐도 짐작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감독의 두 작품에서 선보였던 영상적 기교와 액션들은 두번째 환상의 층에 집중됩니다. 교복차림의 베이비 돌이 일본식 사원에서 거대한 텐구 사무라이와 결투를 벌이고 동료들과 좀비 나치나 드래곤, 로봇들을 상대하지요. 이런 설정들이나 예고편을 보면 뭔가 특이하고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액션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전작 <300>에서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하고 왔던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도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또는 영화가 끝나고 제 뒤를 따라 나오던 떠꺼머리 청년들 입을 빌자면 존내 재미없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음...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매트릭스 식 액션에 화려한 그래픽, 로봇에 용에 일본도에 섹시한 소녀들(심지어 거대한 무기들을 휘두르는)이 등장하는데 재미가 없다니요?




위에서 언급한 줄거리에서 환상 부분을 드러내면 그 이유가 짐작됩니다. 무서운 감옥에 갇힌 소녀가 친구들과 힘을 합쳐 다섯개의 아이템을 모아 감옥을 탈출하려 합니다. 그리고 각 아이템을 모으는 과정이 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되고요. 이렇게 단순화 시키자 저는 '베이비 돌' 역의 에밀리 브라우닝이 출연했던 '레모니 스니캣의 모험'이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바로 이런 구조입니다. 나쁜 악당에게 갇힌 주인공 남매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구성의 짧막한 이야기로 구성된 원작 몇 개를 이어붙인 영화지요. 그리고 원작은 바로 '동화'입니다.

동화는 이야기가 짧고 서사는 가능한 단순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독자가 바로 이제 갓 글을 배운 어린아이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캐릭터 성은 강화하지만 서사는 단순화 시킵니다. 또한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그리 길지 못하고 개개의 이야기는 그때마다 흥미롭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너무 길어지면 흥미가 떨어져 끝까지 읽지 못하고. 이야기간의 연계나 사건적 인과가 너무 복잡해지면 이야기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레모니 스니캣의 경우는 동화이기 때문에 이런 점이 용인됩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부분이 강점입니다. 하지만 써커 펀치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 영화의 주 타깃은 대체 누구인가요. 성인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지루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영상들이 계속 나오더라도 거기서 다루는 이야기/서사가 단순 반복적이니까요. 물론 이런 약점을 가리기 위해 영화는 다양한 복선들을 깔고 다섯번째 아이템이라는 장치도 가미합니다만. 그래도 그 지루함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러니 거의 모든 액션 쟝르를 섭렵한 듯한 (거기다 그 질이 상당히 높은) 영상을 보고나서도 엔딩롤이 오르는 순간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거지요.

그렇다면 써커 펀치의 미덕은 뭘까요.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커 펀치에 열광하는 관객이 좋아할 부분은 뭘까요? 일단은 게임적 요소가 있을 겁니다. 미션을 받고 적을 물리쳐 아이템을 획득한다는 구성은 RPG게임과 흡사합니다. 책이나 영화보다 온라인 게임 플레이 한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라면 이런 서사가 친숙할 것입니다. 게다가 거기에 나오는 영상이란 것이 게임에서 어설픈 3D그래픽으로 감질나게 보아오던 것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부분은 일부 오덕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일본식 교복을 입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양갈래 머리를 휘날리는 금발 소녀라던가... 섹시한 의상에 시커먼 총을 휘두르는 미녀 자매라던가. 어찌 보면 영화는 어느 오덕의 몽정을 훔쳐보는 느낌도 있습니다. 베이비 돌이 춤추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부분에 흥분한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감독이 예전부터 꿈꿔오던 프로젝트라잖아요 :-> )

스콧 글랜이 연기한... 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자꾸만 NPC란 단어가 떠올라요. 하여간 그 역할의 활용이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사실 보면서 저는 베이비 돌의 친부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뭐 아직 가능성은 있습니다.^^)



에밀리 브라우닝의 금발은 영 아니다 싶습니다. 역시 브루넷이 어울려요. 스윗 피 역의 애비 코니쉬는 니콜 키드맨을 연상시키는 외모네요. 심지어 호주 출신. 혹시 가계도 어디선가 니콜 키드맨과 겹치는 거 아닐까요. 칼라 구기고 오랜만에 보는데 늙었네요. 역할이 그래서 그런가. 제이미 정은 여지껏 드래곤볼 에볼루션 출연자로만 기억됐는데 이번에 긍정적으로 업데이트 됐습니다.

앞서 말한 감독의 전작 300, 와치맨과는 달리 이번엔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입니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것인지 감독의 크리에이팅이 부족한 것인지는 몰라도 두 영화의 주요 장면은 거의 컷 바인 씬으로 원작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의 연출에 있어 참조물이 있었던 전작과 달리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써커 펀치의 영상은 순수히 감독의 창작이라기엔 뭔가 캥기는 구석이 있습니다. 영화는 RPG게임과 일본산 창작물 거기서 파생된 오덕 문화에 상당히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문득 큐티 하니의 실사판을 잭 스나이더가 연출한다면 어떨까 싶은 오덕스런 상상을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