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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빅 미라클 - 켄 콰피스


빅 미라클



(2012, 켄 콰피스)



처음 이 영화 포스터를 접했을 때엔 어디서 자연다큐 하나 또 수입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캐스트에 드류 베리모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또 어쩌다보니 시사회 티켓이 수중에 들어와 영화를 보게 됐지요.



그러니까 드류 베리모어란 배우 이름 외엔 거의 기대치가 없었다는 겁니다. (제가 다큐 좋아라 하지만 최근 극장 개봉하는 다큐들은 보통 방학시즌 맞아서 애들용으로 제작되거나 편집한 경우가 많잖아요. 여전히 아름다운 화면들이 펼쳐지지만 뜬금없는 연예인 더빙과 아이들의 짧은 주의 유지력을 위한 빠른 편집으로 알맹이는 없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극영화였습니다. 게다가 제작은 워킹 타이틀! 워킹 타이틀 로고 보는 순간부터 조금씩 제 기대치가 오르기 시작했고 마지막 엔딩에선 내심 박수를 보냈습니다.

예, 고래가 나오고 그린피스가 나오고 남녀상열지사가 펼쳐지는 뻔한 가족영화인 건 사실입니다. 게다가 지들이 잘못해서 빙하에 갇힌 고래 세 마리를 구하겠다고 냉전의 기운이 여전히 살벌하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소가 힘을 합쳐서 빙하를 깨부순다는 내용입니다. 일면 황당하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란 겁니다.

1989년 톰 로스가 발표한 'Freeing the Whales'에 기초한 영화는 그 전해인 88년 알라스카 포이트 배로운 인근 만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 회색 고래 세 마리를 구하기 위한 이른바 'Operation Breakethrough'에 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알라스카 원주민인 이누이트들의 생활을 취재중이던 아담 칼슨은 우연히 얼어버린 바다 아래 갇힌 회색고래들을 발견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들은 추운 겨울로 바다가 얼기 전 만을 빠져나가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미처 그러지 못하고 있다가 얼어버린 바다에 갇히고 만 거죠. 아가미 달린 물고기라면야 어찌어찌 언 바다에서 살아가겠지만 숨을 쉬기 위해 물위로 올라와야 하는 고래들은 수면이 얼어버리면 꼼짝없이 질식할 상황입니다. 칼슨은 이들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하게 되고 이 꼭지가 어찌어찌 내셔널 티비에 걸리게 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하고 거기에 칼슨의 엑스 걸프렌드이자 그린피스 회원인 레이첼 크레이머가 가세하면서 고래를 구출하기 위한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됩니다. 이누이트, 환경단체, 미디어, 행정부, 군대, 심지어 소련까지 고래 세 마리 구하겠다고 얽히는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도 어설프지도 않은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하면서 소소한 웃음과 감동도 놓치지 않네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면 늘상 궁금한 게 어느정도 사실에 기반했는가 하는 겁니다. 이런 궁금증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실제 사건 당시 촬영된 언론 영상 등을 통해 극중 인물과 실존 인물들을 연결시킵니다. 그러니 영화 끝났다고 급히 궁둥이를 떼어선 안됩니다.

제가 봤을 때엔 막판에 더못 멀로니가 연기한 스콧 보이어 대령의 실제 모습이 나오자 여성분들의 낮은 탄식이 터졌습니다. 이봐요 아무리 서양인들 인물이 좋다지만 더못 멀로니급 인물이 그렇게 흔할 줄 알았나요? ㅋㅋ

드류 베리모어가 연기한 캐릭터는 살짝 짜증이 일더군요. 의도야 좋지만 사실 그 좋은 의도를 제외하면 사고뭉치에 독단적이고 남의 얘기 듣지 않는 피곤한 독불장군 스타일이죠. 선의도 남을 움직이려면 세련될 필요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새삼 확인했어요. 뭐 그래도 결국 고래도 구하고 남친도 돌아오고... 극중에서 가장 해피할 사람이겠죠.



냉전 시대에 미소 양국이 고래들을 위해 한마음이 된다는 영화같은 상상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은 새삼 신기합니다. 이런 특별한 사건을 왜 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88년이면 딱 영화에서 고래는요.. 하면서 발표하던 어린이 나이였을 텐데. 생각해보니 올림픽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네요. 정부선전 하느라 이런 외신은 묻혔겠지요. ㅜㅜ

실재 사건에 관련한 정보들을 찾아봤는데 거의 영화처럼 흘러간 모양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구조작전에 든 비용이 당시 돈으로 백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네요. 엄청난 돈과 엄청난 인원과 엄청난 시간이 동원된 작전이었지만 그 결과란게 달랑 고래 두 마리 바다로 방생한 거라니 웃기는 노릇이라 볼 사람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계산 없이 단지 모두가 하나되는 것 만으로도 가치있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