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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토마스 알프레드손



냉전 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스파이물, 내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한 퇴직 요원의 귀환. 뭐 요런 정보만 가지고 이 영화 보러 갔다가 벙쪄서 나올 사람들 많지 싶습니다. 게다가 뭔가 심각한 분위기에 디지털 마냥 깔린 숫자들이 나열된 게리올드만 버젼 포스터를 볼짝 치면 사전정보 없는 사람은 빤한 헐리웃 스릴러 즈음 되겠거니 할테니까요.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상당히 충실하게 원작을 화면으로 옮겼습니다. 물론 소소하게 바뀐 부분들이 있어요 작게는 우유병이 환풍구로 바뀐다거나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바뀐다거나 하는 것부터 크게는 작전지역의 변경까지. (시간적 배경도 조금 바뀌었다는 말들이 있는데 제가 역사엔 꽝이라서 확실하진 않습니다) 여튼 영화를 100% 가깝게 이해하기 위해선 원작을 일독하고 가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영화에선 축약과 생략이 많아요. 원작에서 몇 페이지를 할애한 심리묘사나 회상장면들이 영화에선 달랑 한 화면에 또는 삼분지 일 정도로 줄어든 독백으로 처리되어 버리니까요.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고 '이게 뭔 소리야...' 하다가 끝날 수 있겠더라고요. 게다가 히어링이 되지 않아 자막으로 쫓아가야 하는 입장에선 더더욱 문제지요 (그런데 히어링이 되어도 문제입니다. 중간 중간 나오는 비영어권 언어들이 구사되는 부분에서 영어 자막이 없으니...) 그럼 원작을 읽으면 다 이해되느냐? 이 부분도 장담을 못하는 게 원작 자체가 꽤나 다층적이고 축약적인 부분이나 상징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일반독자들은 제대로 흡수하기가 힘들어요.

불평이 많긴 했지만 바꿔 말하면 영화는 굉장히 밀도가 높으며 또한 다층적이고 수준 높은 영화언어로 풀어진 '웰 메이드'란 말도 되겠습니다. 아마도 재감상을 할 수록 이해와 함께 감상도 깊어지는 영화가 되지 않겠나 싶어요. 거기에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캐스팅도 한 몫 합니다. 게리 올드만,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하디, 콜린 퍼스 등등... 연기 좀 한다 싶은 영국 배우들은 싸그리 긁어 모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농밀한 캐스팅입니다. 자연스럽게 연기의 질이 매우 높아요. 영화 자체가 템포가 굉장히 느리고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는 상영시간 내내 화면에 몰입되었던 건 이야기 자체의 힘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역량이 큰 것 같더라고요.

아마도 이 영화는 묵혀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게 될 것 같아요. 세월이 지나 경험과 지식이 늘어날 수록 감상도 달라질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즐기러 들어온 사람들에겐 독약같은 영화일 수도 있겠더군요. 제가 보러 갔을 때만 하더라도 엔딩크레딧 보며 '이게 뭐야? 끝이야?'라거나 '대체 뭔 내용이야?'라는 불평들이 여기저기 터져나왔고 인터넷 감상에도 영화가 너무 어렵다는 불만들이 많았거든요.

짐 프리도와 빌 헤이든의 관계는 참 곱씹을 수록 끈적합니다. 마지막 라이플을 들고 선 짐 프리도 역의 마크 스트롱의 모습을 보며 한국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 대사가 떠올랐어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아마 그런 감정 아니었을까요?

게리 올드먼.. 진짜 징글징글하게 연기 잘 하네요. 솔직히 레옹 같은 영화에서의 오버액팅 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인상에 많이 남는 배우였는데 이번 영화에선 조지 스마일리라는 캐릭터의 성격상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이 희귀함에도 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요. 다만 원작의 스마일리의 묘사와는 조금 갭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조지 스마일리가 저리 스타일리쉬하니 빌 헤이든을 콜린 퍼스 정도가 연기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앞서 말했지만 영화의 난이도(?) 때문인지 관람환경은 꽝이었어요 중딩 정도로 보이던 애들은 아예 영화 중간 포기하고 나가버렸고 옆에 앉은 아줌마들은 서로 토론회를 벌이다 나중엔 포기하고 전화통화에 열중하질 않나... 헤고...


++

팅커(땜장이) 테일러(재단사) 솔저 세일러 리치맨 푸어맨 베거맨 시프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장래를 예측할 때 부르는 동요이거나, 아니면 버찌의 씨앟, 외투의 단추, 데이지꽃의 잎사귀, 큰조아재비풀의 씨앙 따위를 하나둘셋넷 하고 셀 때 숫자 대신 순서 사아 부르는 동요로서 이 경우엔 1~8까지의 숫자를 나타낸다 - 옥스퍼드 동요사전 (팅커테일러솔저스파이-열린책들 중에서 발췌) 

-> 그러니까 우리버젼으로 옮기면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