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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아티스트 -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아티스트

(2011)

사전정보 없이 우연히 예고편만을 접한 순간 '앗 이건 봐야해!'라고 소리지르게 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작년엔 우리 영화 '써니'가 그랬고 바로 이 영화 '아티스트'가 그랬습니다. 처음엔 조금 생소했습니다. 21세기에 제작된 상업영화가 흑백에 스탠다드 비율의 화면이라니.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대사도 자막으로 처리되는 '무성영화' 시대의 재현이라는 겁니다.

사실 무성영화 시대 작품들을 접할 일이 흔치는 않습니다. 저도 대학 교양시간에 맛뵈기로 본 국가의 탄생이라거나 채플린의 무성시대 작품들 정도가 접해본 영화의 전부라 해도 좋을 겁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작품들은 조금은 낯설고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신기한 경험이기도 하지요. 사운드트랙을 넣을 수 없어 화면만 흘러나오고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하며 따로 녹음된 음악으로 BGM을 깔고 (흠.. 원리만 따지면 지금도 다를 건 없군요) 심지어 '변사'가 등장해 일일히 해설과 대사를 쳐주는 광경을 말입니다. 뭐 미국 영화판을 다루는 지라 변사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영화 아티스트는 1927년부터 시작하여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절의 헐리우드를 재현하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신기한 경험과 재미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재미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영화는 무성영화의 쇠퇴를 무성영화 기법으로 보여주며 극중 '소리'의 부재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적극 활용합니다. 일단 '소리'가 없다는 무성영화의 특성은 신기함과 함께 묘한 긴장감을 끌어내기도 하는데 영화 초반부 주인공 조지 발렌타인(장 뒤자르댕)이 자신의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장면 같은 것 말입니다. 화면은 은막 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조지를 보여줍니다. 요즘 영화라면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며 쉽게 설명될 장면이지만 이 영화는 소리가 없어요. 상황의 결과는 오로지 배우의 연기만으로 전달됩니다.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리던 배우가 미소를 지으며 그럴줄 알았다는 듯 여유있는 제스쳐를 취함으로서 우리는 '아 박수가 터져나왔구나'라고 알 수 있는 거지요. 물론 뒤이어 객석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오지만 굳이 그것이 없더라도 우리는 '상상'하게 됩니다. 맞아요 '상상', 현대 영화의 7.1채널 사운드와 놀라운 믹싱기술들로 이제 퇴화되어 없어지기라도 한 듯한 관객의 상상력은 아티스트에서 다시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분명 우리 귀엔 전해지지 않는 부재가 상상을 통해 메워지는 신기한 경험들을 영화 곳곳에서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휘파람소리, 개 짖는 소리, 경적소리, 탭댄스의 경쾌한 리듬 등등)

무성영화의 종말과 유성영화 시대까지를 여전히 무성영화 컨셉으로 보여준다는 서사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처음엔 무성영화로 나아가다 유성영화로 넘어가면서 소리가 등장하는 방식이겠거니 싶기도 했지만 영화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소리를 아끼며 무성영화의 세계에 머무릅니다. 이런 구조의 아이러니 만으로도 평론가들의 흥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01410 PC통신의 푸른 화면으로 스마트폰 시대의 어플 사용법을 검색하는 상황 같은 걸 상상하시면 좀 쉽게 설명이 될까요? 이건 지금 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이며 매우 효과적입니다. 영화는 중반 이후 토-키의 시대를 보여주며 배우의 '목소리'에 열광하는 시대를 여전히 무성영화의 프레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점에서 잠시나마 멋진 소리 스턴트도 보여주지요. 유성영화의 등장을 보고 주인공 조지가 악몽에 시달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지만 전체 영화의 맥락에서 보면 정말 멋진 방점이기도 합니다. 깃털이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에서 전 정말로 움찔했어요.

형식적인 아이디어와 시도들은 분명 멋집니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어떤가로 넘어가보면 조금 갸웃하게 되긴 합니다. 적어도 스토리라인에서 영화는 새롭지도 모험적이지도 않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설정과 전개들이지요. 예상했던대로 '사랑은 비를 타고'가 생각나기도 하고 흑백영화 시절의 스크루볼이 코미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공식이라 할 수 있는 틀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정석대로 흐르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하지만 워낙 정공법으로 가는 지라 오히려 안정된 기분으로 몰입하고 감동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영화사 직원들에게 퇴물 소리를 듣고 돌아서던 조지가 페피와 만나는 계단 장면이라던가 조지의 집에 화재가 나는 장면들에선 코 끝이 찡해지더군요. 게으르고 뻔뻔한 것과 우직하고 정직한 것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색다른 의미로 좋습니다. 무성영화라는 기술적 특성에 맞춰 배우들도 그 시절 연기방식들을 모사하는데 정말 '잘 한다'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특히 주인공 조지 역의 장 뒤자르댕은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지점을 절묘하게 소화시킵니다. 조지의 트레이드 마크인 손 인사는 정말 따라해보고 싶을 지경. (뭐 따라하면 욕을 바가지로 들을 것 같긴 합니다만)
조역,카메오에는 원로격 명배우들이 포진하여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호연을 보여줍니다. 존 굿맨, 제임스 크롬웰, 말콤 맥도웰의 모습을 오랜만에 그것도 흑백화면을 통해 보는 건 저에게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준 UGGY를 잊어선 안되겠죠. 미친 존재감이란 표현은 아마 이런 배우에게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ㅎ


페피의 연정이 드러나는 특정장면은 그 맥락만 떼어놓고 보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도 같더군요. 의도된 연출일까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일까요? 몇 년전 조인성 커피 선전에 배경음만 바꿔서 공포물로 바꾸던 패러디가 떠올랐어요.

무성영화인 만큼 화면정보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걸 이용한 소소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눈막고, 귀막고, 입을 막은 원숭이 상의 반복적인 활용도 그렇지만 처음 조지와 페피의 긴장감이 표현되는 분장실 장면에서 벽에 걸려있던 조지의 영화 제목인 'Thief of her heart'는 그 자체로 잔잔한 코미디였고, 자신의 소장품을 경매에 붙이고 돌아나오는 조지의 모습 뒤로 걸린 'lonely star'란 간판은 괜히 쓴웃음 짓게 만들더군요. (경매장 장면에선 페피가 출연한 'Guardian angel'이란 영화의 포스터가 보여지기도 한다는 군요)

영화에선 조지가 왜 유성영화 시대에 퇴물이 되는 지에 대해 구체적 설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무성영화 시절에 머무르길 원하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충분치 않죠 그걸로는 영화사에서 그를 내치려는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리고 보고 난 후에도 궁금했던 부분인데 DJUNA의 영화평에서 겨우 해답을 얻었어요.
http://djuna.cine21.com/xe/3617733#2

영화에서 성공 후 페피가 사는 집과, 조지가 누워있던 침대는 메리 픽포드가 사용했던 것이라는 군요.

퇴물이 된 조지가 집에서 홀로 보고있던 무성영화는 더글라스 페어뱅크스가 출연한 마스크 오브 조로의 실제 필름에서 클로즈업 장면만 장 뒤자르댕의 모습으로 바꿔치기한 거랍니다.

영화에선 '줌'을 사용하는 장면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 시대엔 그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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