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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두레소리 - 조정래

두레소리 -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

CGV

조정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접하면서 저는 간만에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판소리와 경기민요라는 '소리'를 전공하는 두 학생 슬기와 아름이는 전공과목 처럼 꽤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입니다. 서로 죽이 척척 맞는 친구인 둘은 그만큼이나 땡땡이도 많이 쳤는지 모자란 출석일수를 채워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상부에서 '협조'랍시고 찍어내린 행사 참여를 위해 학교에서 합창부를 급조하고 이 두아이들 처럼 출석일수 채워야 하는 아이들을 모아 합창부 연습에 들어가게 되지요. 합창부를 맡은 함현상 선생님은 새로 부임한 강사이고 현대음악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국악에 길들여진 아이들을 데리고 짧은 기간 안에 그럴듯한 '합창' 무대를 만들어야 해요. 국악에선 없는 화성이라던가 발성을 기초부터 가르쳐야 할 판이죠. 심지어 아이들 대부분은 출석일수 채우는 게 목적인 의욕제로 상태입니다.

스토리는 많은 부분에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제작한 남매 같은 두 편의 영화 '워터 보이즈'와 '스윙 걸즈'를 닮았습니다. 의욕이 없거나 다른 데 한눈 팔린 아이들이 모여서 우당탕 소동을 벌이는 사이 어떤 목표를 가지게 되고 그것을 위해 그동안 잊고 있던 청춘의 열정을 소박하게 태우는 거죠. 이 영화들도 그렇지만 두레소리의 이야기도 소박합니다.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자 목적은 '전국대회우승'이라거나 '최고의 XX'이 되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잠깐 보았던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잡아보고 싶은 거죠. 두레소리 합창단의 목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합창을 공연하고 들려주고 싶다 딱 그정도의 것입니다. 별것 아닌 일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수험에 열중해야 할 고3 아이들의 일탈일 수도 있는 공연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또 다른 성취이자 자아찾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실력을 닦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 이외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열을 올리는 것도 그 나이에 한 번쯤 해봐야 할 일이니까요. 수험이나 준비하라며 그걸 막으려 드는 '학교'의 모습이야 말로 기이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워터보이즈와 스윙걸즈 두 편의 영화와 두레소리의 닮은 점이라면 모두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남학생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팀이라던가 여고생 스윙밴드 같은 현실의 독특한 뉴스에서 소재를 잡아 코미디로 꾸민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와 두레소리가 다른 점이라면 보다 현실에 안착해 있다는 겁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영화의 이야기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내 동아리인 '두레소리' 1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영화의 연기는 실지 두레소리 2.3.4기 후배들이 담당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두레소리의 시작이 있게 한 함현상 선생님 역할은 본인이 직접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캐스팅은 영화에 다큐적인 현실성을 부여하고 (일단 창을 하는 모습, 합창하는 모습 모두 연기자 본인이 직접 해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들은 두레소리 회원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진실성을 높여줍니다. 연기자들은 자신의 선배들이 겪었을 영화 속 이야기의 고민들을 직접 몸으로 부닥치던 아이들이니까요. 아마츄어적 연기의 한계는 있습니다만 다큐멘터리처럼 움직이는 카메라와 연출 덕에 크게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기들이 무척 현실감 넘치고 좋았어요. 아마 예고학생들인 만큼 나름의 끼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나같이 모델, 얼짱 같은 기존 영화의 여고생들과 달리 진짜 여고생들의 모습에서 풍기는 '포스'도 영화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남자 입장에서도 영화 내내 크크 거리며 그래 저게 진짜 우리나라 여고생들 모습이겠지 싶더라고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처음 든 느낌은 '부러움'이었습니다. 영화 속 아이들의 모습, 두레소리라는 경험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미처 그런 소중함을 누리지 못하고 삭막한 고교생활을 보낸 제 입장에선 절절히 알기 때문이었죠. 결코 돌아올 수 없고 가장 빛나는 시기를 해뜰때부터 달이 질때까지 학교에 박혀서 공부만 해야했던 것이 너무나 아쉽더군요.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연이어 들리는 요즘 두레소리는 학교문제의 진정한 해결방향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딴소리지만 공식 포스터 속 아름이와 슬기는 뽀샵이 지나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