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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캐빈 인 더 우즈


드류 고다드



최근들어 호러 쟝르는 '리메이크'가 대세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추억속 vhs에서 보았던 악당, 악마, 크리쳐들이 최신 기술의 힘을 빌어 부활하는 모습을 봤고 때로는 지들끼리 싸우는 경망스런 꼴도 봤지요. 네, 물론 영상기술의 발달로 이전에 불가했던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매력 포인트가 작용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이상 매력적인 무언가를 만들기엔 이 쟝르에서 괜찮단 싶은 선택지를 소모해버린 이유도 컸지요. CG다 뭐다 비용 생각하면 예전처럼 싸게, 빠르게 얼렁뚱땅 찍어서 캐릭터 빨로 장사해먹자니 수지타산은 맞지를 않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자니 떠오르지오 않으니 이미 검증된 것들을 재활용 했던 겁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호러 쟝르야 말로 더 울궈먹을 게 없다는 한탄은 창작자, 관람자 공히 늘어놓는 한탄인데요. 영화 캐빈 인 더 우즈는 이런 하소연에 멋지게 한 방 먹이는 작품입니다. 이미 써먹은 것들을 그대로 가져와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거죠.


영화의 스토리는 제목 만큼이나 뻔해보입니다. 5명의 대학생이 숲속 오두막으로 여행을 가는데 전자기기는 먹통이고 가는 길에 수상쩍은 아저씨가 불길한 경고를 하고 밤이 되자 기기묘묘한 일들이 벌어지다가 생각지도 못한 침입자가 나타나는 거죠. 쟝르팬이라면 이 스토리만 듣고도 벌써 영화 서너편은 읊어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본편을 보면 시작부터 뭔가 다름을 보여줘요. 영화는 숲속으로 캠핑가는 대학생들의 이야기와 겹쳐서 정체모를 연구기관의 연구원 두 명을 교차편집합니다. 대학생들의 모습을 이들 연구원들은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조종하지요. 심지어 숲 속 오두막은 최첨단 기기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세트입니다. 여기서 이미 영화는 한 번 기존 공식을 뒤틀며 쟝르접합을 시도해요. 기존 공포영화 클리셰들로 가득 찬 세트장의 대학생들을 감시하고 조종하는 연구실이란 설정에서 재미있는 프레임이 보입니다.


기존 영화를 보면서 '어찌 저렇게 뻔한 인물들만 모이나?' '왜 저 녀석들은 저런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아니 왜 저런데 가면 꼭 저런 지하실이 있냐고?' 등등의 궁금증들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버림으로서 궁금증 자체가 설정에 의해 모두 설명되는 겁니다. 연구실에서 스크린으로 대학생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은 자기 의도대로 캐릭터를 멍청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작가,제작자이면서 그들의 행동 변수에 연연하여 앞으로 전개에 가슴 졸이는 관객이기도 하고 동시에 당연하게도 극속 캐릭터이기도 한 거지요. "이게 다 얘기를 전개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라는 현실의 해석이 아예 영화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겁니다.


마치 스크림 시리즈에서의 재기발랄한 쟝르 해석을 연상시키는 이런 설정 덕분에 쟝르팬들은 연신 낄낄거릴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함께 뭉쳐야 산다고 외치자 '죈장!'이라고 소리치며 멍청이 가스를 살포하는 연구원들 같은 거 말이지요. 여기에 서브텍스트로 기존 명작들을 연상시키는 장치들이 가미되어 정말 한 장면도 심심한 줄 모르고 살펴보게 만드는데요 지하실에서 각자가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새삼 떠오르더군요. 


이렇게 교차편집으로 실험체와 감시자를 보여주던 영화는 후반부에 드디어 경계가 무너지고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p)로 돌입합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단서를 흘리긴 했으나 관객으로선 막연히 상상만 했던 설정들이 적나라하게 실체를 드러내고 궁금증들은 모두 해결이 되면서 아마도 쟝르 역사상 가장 버라이어티 하고 스펙타클할 장면이 펼쳐지는데요 저로선 계속 낄낄댈 수 밖에 없더군요.


영화는 호러 쟝르의 새로운 공식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패러디 방식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건 1회성 성격이 짙다는 거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접근 프레임을 잘 살펴보고 연구한다면 앞으로도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뭔가 생각난다면 당신은 호러팬!)

영화의 호불호가 선명히 갈릴 거 같습니다. 일단 제대로 영화를 즐기려면 쟝르공식, 지식이 필요해요. 많이 접하고 많이 알 수록 보이는 것들이 풍부해지는 영화입니다. 물론 전혀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의 재미를 즐길 수는 있겠지만 그리 달가운 재미는 아닐 겁니다. 일례로 영화 끝나고 나오는데 한 여성 관객은 '올해 본 중에 최악의 쓰레기'라고 큰 소리로 영화를 평하더군요. 지식이 없는 사람에겐 피카소 작품이나 애들 낙서나 거기서 거긴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