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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섬 그리고 좀비 - 백상준 외 4인


섬 그리고 좀비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백상준 외 4인

(2011,22)

2010년 황금가지에서 진행한 ZA(좀비 아포칼립스) 공모전 수상작품들을 모은 책이다.

사실 나도 같은 공모전에 응모했기 때문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수상하지 못한 자의 질투일까. 수록된 수상작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작품들도 있었다.

섬 - 백상준
어둠의 맛 - 펭귄
잿빛 도시를 걷다 - 황희
도도 사피엔스 - 안치우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 - 박해로

 섬 - 좀비 창궐 이후 자신의 아파트에 갇혀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좀비의 바다 속에 갇힌 아파트 섬이라는 제목의 상징은 현대 사회 속에서 각자가 혼자만의 섬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개인에 대한 은유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 그런 부분도 읽힌다) 전체적인 구조나 소소한 설정이 다음에서 '강풀'이 연재한 '당신의 모든 순간'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데 표절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설정에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실 시체들의 낯에서 쇼핑몰이 아파트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이런 손쉬운 설정으로 쓰여진 작품이 대상을 수상한 점은 의외일 수도 있겠는데 상당히 현실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낸 묘사와 인물의 심리 같은 부분에서 점수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디어의 기발함이나 의외성 보다는 안정적이고 짜임새 있는 모양새에 더 점수를 준 것 같다.

어둠의 맛 - 정치적이고 우화적인 이야기다. 좀비가 되었다가 다시 제정신이 돌아온다는 설정은 독특하지만 기능적 역할 이상은 하지 못한것 같다. 반전은 쉽게 예상할 수 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와는 조금 상충되는 느낌도 있어서 좀 무리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좀비는 공포의 대상 보다는 경멸의 대상이며 어찌 보면 이주노동자와 같은 소수의 약자 처럼 보이기도 한다. 욕심을 더 부렸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능성 측면에서 가장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잿빛 도시를 걷다 - 수록 작품 중 가장 단편이란 분량에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만큼 소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좀비 창궐의 상황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며 근친살해 모티브가 도드라진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미를 죽여야 하는 근원적 공포 (새로운 세대를 위해 기존 세대는 필연적으로 사라져야만 하는)를 끌고 가지만 그런 주제와 특별한 관련 없이 이어지는 기존 클리셰로 가득한 용두사미적 결말은 조금 아쉽다.

도도사피엔스 - 좀비 자체 보다는 좀비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인류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작품이다. 존망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인간 자기 희생적 인간의 모습과 권력 뒤에 숨어 보신만 하려는 인간 등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며 거대한 힘(자연의 힘?) 앞에 스러져가는 결말로 이어진다. 그런 결말이나 도도 사피엔스라는 멸종 인류를 상징하는 제목(도도새에서 따온 것이다) 등은 '나는 전설이다'와 맞물린다. 나름 그럴듯한 과학적 설명을 가져다 붙이는 부분도 그렇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호러 보다는 SF적 요소가 강하다. 전체적 이야기의 기믹은 좋지만 캐릭터가 전형적이고 약한 것이 단점.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 - 아파트가 감옥으로 바뀌었을 뿐 대상작 섬과 크게 다를 건 없는 이야기다. 사람을 가두어 두는 감옥이 외부로부터 생존자를 보호하는 성으로 바뀌는 설정이나. 교정시설 근무 환경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는 좋지만 전체적으로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많고 홀로 남은 속에서 혼잣말이 많아진다는 설정을 빌어 문어체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독백은 후반부로 갈수록 손발이 오그라든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기의 생존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면서 이렇다할 설명이 없다. 그저 던져주는 몇 개의 단서들이 있을 뿐인데 이럴거면 주인공의 환상이나 아예 천명관의 '고래'처럼 신화적 판타지로 끌고 가는 편이 나았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