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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늑대소년 - 조성희

늑대소년
 


조성희

 


고교생 순이는 폐병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중입니다. 순이의 요양을 위해 가족 모두가 이사 온 한적한 시골집에서 꾀죄죄한 모습의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말도 못하고 짐승처럼 행동하는 이 소년의 정체가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제목처럼 영화는 늑대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송중기가 연기하는 철수-늑대소년의 정체는 '늑대소년'이라고 칭할 때 상상하는 두 가지 설정을 줄타기합니다. 어릴적부터 늑대에게 길러진 실화 속 야생아 같기도 하고 흔히 '워울프'라고 칭하는 환타지 속의 존재 같기도 한 거죠. 물론 나름의 과학적 설명을 붙여두기는 하지만.

송중기를 제외한다면 6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 인물들은 굉장히 통속적입니다. 박보영이 연기한 순이는 무려 '폐병'으로 요양을 온 서울소녀고 밤마다 일기에 병에 걸린 자신의 비련함을 토로하는 사춘기병 걸린 딱 그시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인물이지요. 그녀의 주변 상황도 그렇습니다. 아빠는 사업을 막 일으키려던 찰라 돌아가시고 그의 동업자가 사업을 가로채버린 상황에서 동업자 아들이란 60년대 양아치 도련님 같은 지태는 경제적 원조를 빌미로 순이와의 결혼을 기정사실화 하려고 하고... 음, 송중기의 철수도 따지고 보면 통속극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가진 것 없는 순박한 시골 청년인데 얼굴 잘 생기고 '힘도 좋아'서 서울여고생과 금사빠 해가지고 연적이 되지만 결국 비정한 현실에 눈물의 이별을 해야하는..0_0

 

이러한 설정과 함께 늑대소년이란 캐릭터가 얹혀지는데요 이 역시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이질적인 존재가 현실에 끼어들면서 아이들과 교감을 하게되고 평화로운 일상이 흘러가다가 그 존재의 정체를 알게된 어른/권력자들이 개입하면서 위기가 찾아오는 거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E.T.였어요.

참 익숙하다 못해 물릴 수도 있을 소재/이야기인데 이 두가지를 적절히 섞고 무려 송중기/박보영을 전면에 내세우니까 생각지도 못한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도 않고 그닥 통속적이지도 않으며 손발이 오글거리는 증상도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대신에 돌직구 스타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올린 두 남녀배우의 묘한 관계가 막판에 크게 감정선을 자극하더군요. 간만에 극장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이야기가 크게 특별하진 않지만 정해진 공식 안에서 나름 최고치를 끌어냈다는 느낌이에요. 동화풍의 전개와 후반부 철수의 정체에 관련된 현실적 설정들도 적절히 섞였고요. 전체적으로 '톤'을 끝까지 적절하게 유지했다고 할까요. 중간중간 적절히 섞은 유머코드들도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중반의 템포를 적절히 끌어올리고요. 무엇보다도 송중기의 철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요. 쿨섹시 아니면 고어 두가지 밖에 답이 없다는 듯한 외국의 늑대인간과는 다른 느낌에 소소한 곳까지 신경써서 캐릭터 특징을 잡은 덕이 큽니다. 철수는 '짐승 같은 사람' 보다는 '사람처럼 생긴 짐승'에 가까워요. 늑대라지만 그보다는 개에 더 가까워 보이는 행동양식과 관련한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는데 예를 들어 첫날 장영남이 방문을 닫고 나가자 어쩔 줄 모르고 킁킁대며 서성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을 살피는 모습 같은 거요. 아마도 애견인들이라면 '어머 저거...'라며 손뼉을 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송중기의 특정 '대사'는 정말 신의 한 수 랄까 그 대사가 터지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 여성분들의 탄성이 터져나오더군요.

결말에 대해선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 이야기를 끌어온 동화적인 요소와 현실의 시간을 살아와 늙어버린 순이의 감각이 적절하게 타협한 느낌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후에 철수는 행복했을까라는 의구심은 남을 수 밖에 없는 거죠.

 

이거저거 다 필요없고 박보영, 송중기 두 사람 얼굴 뜯어 먹는...아니 보는 것만으로도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화면도 그만큼이나 아름답고.

영화 한 줄 요약 - 폐병 소녀의 짐승남 조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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