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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영화] 007스카이폴 - 샘 멘데스

007 스카이폴


샘 맨데스



다니엘 크레이그의 세번째 007영화입니다. 카지노 로얄로 리부트된 후 새로운 전통이라도 만드려는 것인지 영화는 이번에도 화끈한 추격전으로 시작을 알립니다. 위장 요원들의 신원정보가 담긴 하드드라이브를 회수하려는 제임스 본드는 그러나 혼란스러운 지휘상황 하에 M의 명령에 따라 발포한 동료의 총에 맞아 달리는 기차에서 아찔한 다리 아래로 떨어져 폭포에 휩쓸립니다. 뭐.. 주인공이라서 죽을리는 없지만 MI6에선 그를 사망처리하고 본드도 딱히 복귀할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하드드라이브를 가로챈 신원미상의 범인이 M을 타깃으로 복수를 펼치며 MI6 본부 건물을 컴퓨터 해킹을 통해 날려버리는 사건이 벌어지자 본드는 현업복귀를 위해 런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당연히 범인 잡고 본드는 다시 007의 자리로 돌아오고 MI6도 이러저러한 변화를 겪고...
 


카지노 로얄은 구태를 벗지 못하고 새로운 관객 취향에 발맞추지 못해 흘러간 유행이 되어버리는 듯한 007 프렌차이즈에 새로운 심장을 이식한 작품입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의 다니엘 크레이그란 배우의 캐스팅, 본 시리즈를 위시한 최근의 시류를 적극 반영한 세련된 액션, 원작의 맛을 살리면서도 적절히 현대적 감성을 살린 캐릭터와 드라마. 21세기에 맞추어 재해석된 007의 모습에 평단도 관객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죠.
반면 이어서 제작된 퀀텀 오브 솔러스는 좀 애매했습니다. 여전히 화려한 액션이 펼쳐지지만 전편의 매력은 좀처럼 느껴지질 않았고 심지어 악당은 도로 숀 코널리 시절로 돌아가는 듯 보였죠. 리부트는 일단 성공했으니 다시 예전에 써먹던 기술들 좀 날려보자는 안이함 마저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론 실망스러운 속편이었죠.
이번 스카이폴은 그래서 불안했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007에서처럼 제대로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리며 다시 관객의 기대를 외면하는 속편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죠. 사실 퀀텀...때 만큼만 해줘라며 기대를 낮추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더군요. 일단 중반까지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망처리된 상태로 방황하는 007의 모습이 그려지는 부분에서 좀 늘어지긴 했지만 별 역할도 없는 본드걸이 스멀스멀 나오고 아름다운 풍광좀 비춰주고 이렇다할 전개도 없이 뻔하디 뻔한 '전지전능하지만 결국 본드에게 깨질 정체불명의 악당'도 나와주고 말이죠. 그러나 본드의 복귀시점부터 조금씩 예상과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후반부에 이르러선 익숙하면서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앞서 카지노 로얄이 007 시리즈를 새롭게 리부트했다고 말했지만 이번 영화야말로 다니엘 크레이그표 007의 본격적인 리부트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의무적으로 넣은 액션장면들을 걷어내고 줄기만 뽑아본다면 영화는 007보다는 액션 장면이 많이 추가된 스마일리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물론 팅커, 테일러...처럼 사무실이 주요 배경인 두뇌게임 같은 건 아니지만 느와르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배경에서 내부의 적이 정체를 드러내는 과정은 이전 007과는 확연히 느낌이 달라요. 영화는 리얼리즘 스피오나지와 이전 007시리즈의 남성 환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완벽한 조율을 보여줍니다.

이전과는 다르다능...이라며 여자국장, 돌쇠형 본드, 주요캐릭터의 과감한 삭제 등을 보여준 카지노 로얄과 달리 이번 작품은 처음으로 돌아가듯 예전 007의 회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전작품에 대한 시니컬한 시선도 잊지않고 내비취며 다시금 적절한 취사선택을 하지요. 이전 시리즈들의 아이콘 부재에 안달하던 올드팬도, 현대 액션여화들에 길들여진 새로운 관객도 모두 만족할만한 어떤 선을 찾으려는 노력이 곳곳에 보입니다. 특히나 골드핑거에 등장한 기념비적 본드카인 에스터마틴 DB5나, 신임 Q의 시니컬한 대사들은 올드팬들에게 좋은 선물입니다. 이외에도 이전 작품에서 사라져 아쉬웠던 주요 캐릭터 한 명이 아주 그럴듯하게 부활하는 것도 그렇고요. (이 부분에선 최근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의 조토끼 군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도 생각나더군요)


영화는 청문회 장면에서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내비치는 장관의 모습과 거기에 응대하는 M의 대사를 통해 시리즈 자체에 대한 자평을 하기도 합니다. 냉전의 유물 같은 00번호의 스파이와 이전 007 시리즈가 겹쳐 보이게 하며 꽤 훌륭하게 정리/마감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의 007을 기대했던 어르신 관객들이나 신나는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실망일 수도 있을 영화입니다. 초반과 후반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액션신이 없고 그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느라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더군요.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늘어진다' '지루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관객도 직접 목격했고요.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을 보여주는 영화에 저처럼 얼씨구나 호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황하며 실망할 관객도 분명 있는 거죠.

(새로운 Q)

초반 이스탄불 액션 씨퀀스에서 그랜드 바자까지 이어지는 옥상 추격씬은 테이큰 2가 생각나더군요.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비슷비슷한가봐요.



(스포일러)




주디 덴치의 M이 마지막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예, 말미에 죽어요. M과 본드의 관계는 그러고보면 평범한 상사 부하 관계 보다는 스승과 제자, 더 나아가 의사가족 같은 느낌마저 있어요. 그녀의 마지막을 지키는 본드와 그에게 유언을 남기는 M, 아니 엠마를 보면(예,M의 본명이 나와요) 직장동료 이상의 감정이 분명 있다고요.
그런데 M의 죽음은 해당 배우인 주디 덴치의 나이 때문인 부분도 있지 않을가 하는 불편한 상상도 해봅니다. 이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긴 해야할텐데 그러기엔 이제 나이가 꽤 있으시고 그렇다고 M이란 캐릭터가 비중이 적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전 시리즈에서 Q 역할의 데스먼드 르웰린의 죽음으로 허겁지겁 배역을 바꾸었던 전력도 있으니...
 

예전에 007 후보로도 거론되었던 레이프 파인즈가 신임 국장으로 결정됩니다. 캐릭터 이름이 '말로리'인 관계로 그 역시 코드명이 M, 007과는 다르지만 그대로 유지가 되는 군요.

앞서 언급을 피했지만 나오미 해리스가 연기한 본드걸 이브는 마지막에 필드요원에서 사무직으로 전환하며 M의 비서직을 맡게 됩니다. 그녀의 본명은 '이브 머니페니'

이전 2편에선 역시나 은근슬쩍 사라졌던 Q도 돌아왔습니다. 이전의 맘씨좋은 할아버지 대신 젊은 피 벤 위쇼가 등장해 가제트 팔이 대신 전문지식과 센스로 적극적으로 본드를 서포트하는 기술요원 캐릭터로 변주되고요. 

창고에 애지중지 모셔둔 DB5를 타고 은신처로 향하던 와중에 M이 승차감 불평을 늘어놓자 본드는 기어스틱에 숨겨둔 비밀버튼을 슬쩍 보여줍니다. DB5는 골드핑거에서 본드카로 등장했던 차인데 영화는 '바로 그 차'라는 설정입니다. 실지로 골드핑거에서 보여준 본드카의 비밀무기가 활용되는 장면도 등장하고요. 그러니 기어스틱의 빨간 버튼의 정체를 아는 이들에겐 그것이 살벌한 농담이 됩니다. 그나저나 다니엘 크레이그의 선임은 진짜로 숀 코너리란 거군요.

(골드핑거의 스틸컷, 비밀무기인 기관총, 심지어 번호판까지 골드핑거와 똑같았군요....)

제임스 본드의 과거사도 꽤나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마지막 전장은 그의 생가고요. 원작 소설에선 그의 과거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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