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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reading 100 books

악마는 꿈꾸지 않는다 - 한국추리작가협회


 

악마는 꿈꾸지 않는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2011,27)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올해의 추리소설이란 타이틀 하에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단편집이다. 이번 책은 2010년에 출간 되었으며 모두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여러 편이 수록된 만큼 본격부터 변격까지 따양한 스팩트럼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곰 인형을 안은 소녀 - 정석화
미스테리적 성격이 짙은 정석적인 글이다. 작가가 상당한 사전조사를 했음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드러낸다는 느낌도 있었다. 오래전 내연관계였던 여자의 살해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의 이야기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 여자의 딸이 어쩌면 자신의 혈육일지도 모른다는 갈등과 살인사건의 미스테리가 동시에 전개되며 긴장을 유발한다. 공들인 만큼 완성도가 높은 글이지만 불친절한 결말은 불만이다.

그놈이 그놈 - 최종철
전형적인 '불행한 여자' 이야기다. 놈팽이들과 엮여서 인생이 자꾸만 꼬이기만 하는 여자가 갑갑한 현실을 차고 나가려는 순간 되려 상황이 뒤바뀌는 아이러니를 잠복수사란 소재와 적당히 섞였다. 제목인 그놈이 그놈은 마지막 반전을 암시하기도 함과 동시에 세상 남자 다 똑같다는 투의 자조적 표현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일견 '운수 좋은 날' 같은 느낌도 드는 결말의 씁쓰레함이 좋지만 그만큼 올드하다는 단점도 있다.

나의 치명적인 연애 - 신재형
한눈에 끌려 쩔래쩔래 미행한 여자가 잔인한 살인범이라는 자극적이지만 단순한 설정을 그만큼이나 단순한 구조로 끌고 간 이야기다. 구조가 단순한 만큼 압도적인 표현이나 사건이 필요한데 너무 예상가능하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나 대사가 많음에도 그 질이 떨어진다는 점은 큰 약점이다.

녹의 마녀 - 이수광
'돈'을 의인화 하여 돈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특한 구조. 제목인 녹의 마녀는 녹색 빛깔의 마성을 가진 '만원권'을 의미한다. 처음 신권이 되어 출고되는 부분을 돈의 탄생으로 보고 여러사람을 거쳐가는 가운데 돈에 얽힌 사람들의 흉한 이면을 들춰내고 있다. 흥미로운 구조지만 좀 더 사회파 적으로 활용하는 쪽이 내 취향이었을 것 같다. 나쁘지 않다. 다만 특별한 사건도 추리도 없다.

서명합니다 - 손선영
다음 아고라에 서명하는 인물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최근 자주 이슈가 되는 인터넷의 문제들을 소재로 한다. 익명성, 악플, 신상캐기 등등의 소재들을 연쇄살인과 연계시키며 기묘한 살인현장을 선보인다. 마지막 드러나는 범인의 정체는 이론적으로 수긍은 가지만 좀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연으로 얽힌 사건에 대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복수극이 가지는 문제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범인이 얼마나 더 많은 범죄를 저질렀을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은 섬뜩한 구석이 있다.

세번째 표적 - 장세연
역시나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 살인범 보다는 킬러 같은 느낌의 범인이 등장하는데 여러모로 무리수가 많았다. 일단 엽총을 살인도구로 사용하면서 그 방식이나 결과가 상충하는 구석이 문제다. 총에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글에서 그려지는 사건 묘사가 엉망이란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추리작가라면 이런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정체가 모호한 범인의 진상도 의도했다기 보다는 역량부족으로 포기한 느낌이다.

악마는 꿈꾸지 않는다 - 류성희
표제작이다. 완구회사 사장의 둘째 아들의 유괴 사건으로 시잔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사실은 오래전 벌어졌던 사장의 첫째 아들 유괴 미수사건과 연결된다는 진상이 드러난다. 과거의 사건이 사장의 자작극이었다는 진상과 함께 피해자의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한다. 표제작인 만큼 반전이 신선하고 구조가 탄탄하다. 다만 단편 분량에 담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금 더 늘어난 분량에서 여유있게 진행되어도 좋았을 것이다.

영국 신사의 일곱 번째 진공관 앰프 - 김지아
변격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어느날 인터넷 중고매매를 통해 알게 된 의문의 '신사'와 그의 매력적인 딸을 알게 된 후 그들과 엮이며 기괴한 경험을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 직접적 사건 묘사는 없지만 그런 부분이 오히려 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이파이 마니아들에게 어필할 만한 소재 묘사는 덤.

원더 레이디스와 처녀시대 - 권경희
단편을 이렇게 막 형식으로 나누는 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것 같다. 이야기가 껑충껑충 뛰는데 전개가 빠르다기 보다는 산만하게 느껴진다. 제목에도 사용된 실제 유명 걸그룹 이름의 패러디도 너무 가볍다. 성문을 이용한 트릭인데 역시나 무리수가 많다. 성문을 통한 개인 식별은 여전히 신뢰도가 떨어지는 현실이고 심지어 그 소스를 채취하는 과정은 너무 조악하다. 

재의 추적 - 김주동
작가가 아마 대구 출신인 모양이다 대구 시민으로서 익숙한 지명들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하드 보일드한 사건이 긴박감 넘친다.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 너무 전형화되어 박제된 느낌의 캐릭터들이 아쉽다. 쌍스런 소리나 연신 내뱉는 조폭도 식상하지만 마치 영국 신사마냥 행동하는 로맨티스트 조폭도 그만큼이나 많이 본 전형이다.

처녀작 공포증 - 이대환
추리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재치넘치는 단편이다.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거기까지 끌고가는 솜씨가 좋다.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마지막에 영화 '만우절' 같은 반전으로 마무리 지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의 결말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