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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ncy's critic

써니 - 강형철


 

써니

 

강형철


웹 써핑중 우연히 써니란 영화의 예고편을 접한 순간 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간만에 딱 제 취향인 영화가 나오는구나 싶었거든요. 심은경, 민효린, 남보라, 강소라 같은 어여쁜 아이들이 우르르 공동주연으로 나오는데다 이야기 구성은 제가 좋아하는 <나우 앤 덴> 스타일의 회상구조!
게다가 예고편에서 살짝 보여준 심상찮은 코믹센스는 강형철 감독이란 간판과 함께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그의 전작 <과속 스캔들>은 흥행과 평론 양측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고 저 역시 매우 높이 평가하는 오락영화였거든요.

써니의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우연히 병원에서 마주친 여고시절 친구 하춘화가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된 나미는 그 시절 어울렸던 칠공주 찾기를 시작하고 동시에 그녀들의 회상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만큼은 주인공이었던 그녀들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되돌아본다는 것이죠.

다들 지적했듯이 써니는 조금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합니다. '그 유명한' 7공주 그룹 써니가 핵심에 놓여있고 그녀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만큼 이야기의 중심인물만 14명이 되어야 하니까요. 캐스팅부터가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이야 비중에 따라 적당히 신인들을 기용한다해도 성인 연기자는 쉬운 문제가 아니지요. 게다가 젊은 시절과 지금을 연기하는 배우들간 이미지의 연결도 생각해야 합니다. 캐스팅이 전쟁에 가까웠다는 감독의 말이 수긍이 가는 지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캐스팅은 매우 좋습니다. 아역이던 성인역이던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알찬 배우들로 가득 채운 느낌입니다. 모든 배우가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인다는 건 아니지만 역할에 맞게 적절히 배치하여 가능성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했다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민효린의 미모를 활용하는 방법이라던가 남보라의 천진난만함을 다구발과 연결시킨다거나 하는 방식들 말입니다.

캐스팅 덕분도 있겠지만 이야기 구조적으로 살펴도 써니 멤버들 각각의 캐릭터는 제대로 살아있습니다. 앞서 말한 줄타기의 또다른 측면입니다. 이렇게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한정된 시간안에 이야기를 집약해야 하는 극영화의 성격상 뒤로 밀리거나 병풍같은 인물이 하나쯤 끼일 법도 한데 감독은 절묘하게 비중배분을 해내며 7명의 써니 멤버 모두에게 자기만의 역할과 개성을 부여합니다. 이 부분은 영화 내내 반복되어 제시되는 나도 내 삶의 어느 순간 만큼은 주인공이었다는 주제와도 잘 들어맞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칠공주 캐릭터 중에 소외되는 인물이 있어선 안되겠죠.

서사적인 측면도 좋습니다. 칠공주의 학창시절은 영화 <친구>에서 시작된 머슴애들의 학창시절 이야기에서 곁가지나 들러리 정도로 등장했던 소위 '여깡'(:->)들에 관한 겁니다. 남성 위주의 이야기에서 누구누구의 깔치나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들러리 정도였던 여학생들의 거친(?) 세계에 대한 나름의 상상이며 회상인 거지요. 코미디라는 쟝르에 걸맞게 가벼운 터치로 풀어나가지만 후반으로 가면 갈등의 극대화를 위해 제법 섬뜩한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간의 갈등을 차근차근 중첩해가는 기술도 제법입니다. 다른 학교와의 전투는 'touch by touch'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흥겹게 진행되지만 정말로 갈등이 불거지고 클라이막스로 치닿는 장면은 옛친구와의 갈등입니다. (이 부분에선 류승범의 품행제로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80년대라는 배경의 활용도 재밌습니다. 그 시대의 팝송들이 배경에 적절히 섞여 들어가고 라붐이 패러디 되는가 하면 운동권 학생인 오빠라던가 마이마이라던가 저녁시간 울려퍼지는 애국가에 국기를 찾는 행동 같은 것들이 코미디 소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써니들이 한창 활동할 무렵 코찔찔이 국딩이었던 저만해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지만 요즘 아이들 눈엔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더군요.

앞서도 말했지만 배우들이 좋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메인 격인 나미,춘화 역의 심은경/유호정과 강소라/진희경이야 아역이나 성인역이나 모두 이미 검증된 배우들입니다. 개중 강소라는 조금 불안했으나 영화를 보니 아주 완벽하게 역할을 소화해내더군요. 시원시원한 외모 만큼이나 앞으로 행보도 주목이 됩니다. (더불어 이 영화로 여성팬들좀 생길 듯)
그 외에 장미, 진희, 금옥, 복희 역에도 적절한 캐스팅과 함께 배우들의 훌륭한 앙상블 연기를 볼 수 있는데요. 개인적으론 남보라 양이 이번 영화로 눈도장 제대로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약간 4차원 캐릭터인데 상당히 어울리네요.
수지 역의 민효린은 대놓고 이쁜 아이 캐릭터인지라 연기력을 선보일 기회는 적었지만 포장마차 씬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더군요 (하긴 저 얼굴이면 뭘 해도 빛나 보이긴 합니다.) 수지의 성인 역은 시크릿 캐스팅인데요 (포스터나 홍보자료에서 슬쩍 가려 놓았지요) 사전 정보를 가능한 차단한 상태로 영화를 감상했기에 제 나름대로 배우가 누구일까 다양한 상상을 했었습니다. 클라이맥스의 매점씬에서 '그 사건'이 벌어진 순간에 떠오른 건 조용원씨였어요. 나이도 적당하고 민효린의 미모에 대적(?)할 만한 미모에다가 사건과도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개인사도 있고요. 그 부분에 집중한다면 좀더 과거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박근혜씨도 가능하겠네요 (이건 농담) 정작 드러난 캐스팅은 좀 심심합니다. 일반 시사에서 관객들 대부분이 '누규...?'란 반응이었고 저 역시 엔딩 크레딧을 보고서야 아.. 그 분! 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재밌는, 다시 말해 좋은 장면과 대사가 많은 영화입니다. 과속 스캔들 때에도 그렇지만 강형철 감독은 맛깔나는 대사를 적절한 페이스로 선보일 줄 아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내내 빵빵 터지는 순간들이 여럿 있어요. 특히 소녀시대(혹은 핑클)과 써니가 맞붙는 장면은 걸작입니다. 로키5 간판을 배경으로 학생 시위대와 전경, 그리고 다시 소녀들이 대적하며 흐르는 음악이 조이의 touch by touch... ㅋㅋㅋ

아직 정식개봉 전이지만 감히 예상해보자면 이 영화, 입소문을 타고 롱런하며 감독의 전작 과속스캔들에 준하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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